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산책 Aug 08. 2020

여행, 그 고단함이 주는 낭만에 대하여

지금 여기에서 추억을 쌓다

2박 3일의 캠핑 계획을 잡아두었다. 비가 온단다. 그래도 강행한다. 신랑이 어떤 사람인가? 한다면 하는 사람!

신랑은 어제저녁부터 주섬주섬 짐을 챙겨 차에 싣고 있다. 아침에도 짐을 나르느라 분주하다. 조심스럽게 묻는다.


- 여보, 우리 갈 수 있을까?


장대비가 내린다. 그가 가기로 한 자연 휴양림에 전화한다. 자연재해로 인해 가지 못하면 위약금 없이 취소해준다는 안내문을 읽은 터라 확인차 전화하는 것이다. 

- 뭐래요?

- 비가 많이 와도 위험할 일은 없대. 그건 개인적으로 판단하라는데.

-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좀 무책임하네.

- 갑시다.


마트에서 장을 본다. 2차 고사를 마치고 오는 아들과 점심을 먹고 출발해야지.

그런데 장대비가 계속 온다.

집에 가니 아들이 와 있다. 원래 함께 가기로 한 지인은 비 때문에 못 가겠다고 취소를 했고, 지인네 가족 중에 아들 친구가 있다. 그 사실을 전하자 아들은 쭈뼛쭈뼛 뒤로 물러서며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순간 신랑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가득하다. 오기를 부려본다.

- 너 집에서 게임 2시간 넘기지 말아라.

이 말을 여러 번 반복한다. 아들은 시험이 끝났으니 게임에 풍덩 빠져 주말을 보내고 싶을 텐데.


딸이 방으로 들어온다. 눈이 벌게져서. 오빠를 최고의 친구로 생각하는 딸은 아빠보다 더 서운해한다.

나는 모두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만, 온순한 아들 편이다.

- 아들, 주차장으로 와서 너 먹을 거 챙겨 올라와.


이런, 아들이 눈이 벌게져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뒤에서 아들을 안는다. 

- 왜? 가려고.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되는데.

- 아니요. 갈게요.

- 근데 왜 울어?

- 모르겠어요. 눈물이 나네요.

순간 나도 울컥한다. 신랑에게 가서 아들도 운다고 전한다. 신랑은 먼저 나간다. 


‘자, 정신 차리자. 행복하려고 가는 캠핑이다.’


아들과 나, 딸이 현관문을 나서려 할 때 신랑이 들어온다.

“100% 환불이래. 가지 말자.”

겨우 맘을 다잡은 우리 셋은 어안이 벙벙하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짐을 다시 집으로 나른다. 나와 아들, 신랑이 2번에 걸쳐 나를 수 있는 짐을 신랑 혼자 날랐으니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 아들, 아빠가 힘들었겠다. 그러니 네가 안 간다고 했을 때 서운하셨겠어.

- 그러셨겠네요.


우리는 지쳐버렸다. 나는 짐 정리를 하다 말고 1시간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비가 잠잠해져 있다. 이렇게 억울할 수가. 딸 방으로 가본다. 태블릿 pc와 물아일체가 되어 액괴 영상을 보고 있다.

- 딸, 비가 그쳤어.

- 힝~

- 너의 서운함을 달래주기 위해 테이블 아래를 텐트처럼 꾸며주겠어. 

이불을 들고 와 거실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 위에 덮고 딸아이의 공간을 만들어 준다. 그 안에서 딸은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다. 캠핑을 가지 않은 아들은 편안해 보인다.


나와 같이 낮잠을 자고 일어난 신랑은 저녁을 먹자고 한다. 점심을 두둑이 먹은 나는 저녁을 건너뛰고 싶지만 그가 차려놓은 식탁 앞에서 포기를 선언한다.

캠핑을 위해 준비한 재료, 소시지와 맥주, 거봉과 아몬드 그리고 컵라면까지 식탁에 차려져 있다. 소시지가 맥주를 부르고, 맥주가 컵라면을 부르네. 그 후 맥주는 모든 안주를 불러들인다.

아들은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딸은 아빠에게 장난을 건다. 아빠가 아들에게 신청곡을 말하고, 아들은 피아노를 연주한다.


- 엄청 큰 텐트에서 놀고 있는 것 같아.


4명이 함께 하는 시간이 완벽하다고 느낀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지.

무척 피곤하면서 즐거운 날이다.

오늘의 일은 머지않아 우리 가족의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행복한 날도 좋지만 이렇게 힘든 날은 더욱 기억에 남고, 두고두고 이야기하기 좋다. 그것을 알기에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여행 중의 어려움을 훗날 상기할 낭만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금 여기에서 추억을 쌓는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을 빼고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