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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Aug 14. 2020

당신은 원래 청소를 좋아하잖아

따로 또 같이 행복하게

나는 바깥공기가 좋았고, 신랑은 뭘 좋아했더라? 연애할 때 우리는 여행 한번 다녀보지 못했다. 신랑에게 물어보면 결혼 전이라 가지 않는 거라고 말했다.

결혼을 했지만 여전히 여행을 가지 않았다. 산이든 바다든 가자고 하면 그는 싫다고 말했다.

나는 좋은 경치를 보면 언제나 신랑이 떠올랐다. 멋진 풍경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하지만 그러한 풍경이 신랑에겐 그다지 감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는 나만큼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 마음 아실이>
                                           김영랑
내 마음 아실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 이하 생략 -

  

고등학교 때 이 시를 접하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한다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의 마음을 안다면 그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 1주년을 맞아 신랑을 졸라서 보길도 여행을 떠났다. 운전하는 내내 신랑은 짜증을 냈다. 


나를 재미있게 해 줄 게 아니라면 왜 여행을 오자고 한 거야?


'아차, 내가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구나!’

아름다운 풍경을 신랑과 함께 봐서 좋은 나로서는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한테 다시 여행을 가자고 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이후로 여행을 가긴 했지만 지인이 함께 가자고 해야만 다녀왔다. 우리만의 여행은 없었다. (이렇게 낭만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진짜 많이 변했네.) 아이 둘이 생기고, 함께 여행 다니는 지인 덕분에 그나마 여기저기 다닐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신랑에게 어딘가를 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가자고 이야기했다가 그의 운전 중 짜증과 생색을 한 번 더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차차,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은 그가 제안할 때에만 움직인다. 그럴 때는 짜증을 내지 않더라.)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랐고, 나도 이런 상황에 적응해 혼자 커피를 마시러 나가거나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한다. 그리고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면서 내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다. 


토요일에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2시간 정도 청소를 한다. 아이들이나 신랑에게 청소를 시키지 않고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근육을 쓰고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며 청소를 즐긴다.

 

어느 날 신랑은 말했다.

- 토요일에 어디를 못 가겠어.

- 왜?

- 당신이 청소를 좋아하잖아.

- 여보, 난 청소를 좋아하지 않아. 해야 하니까 하는 거고, 할 게 없으니까 하는 거지.

- 그런가?


요즘은 신랑이 바람 쐬러 가자고 말해도 내가 고개를 젓는다.

멀리 가지 않아도 공원이나 밭 근처에서 계절에 따른 자연환경의 변화와 시원한 바람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서글프게도 그와 함께가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훨씬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신랑을 대하게 된다.


  순간순간 따로 또 같이 행복하면 되지 않겠는가? 


너무 늦게 깨달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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