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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Aug 17. 2020

우리 집 전담 수리기사

아르바이트하는 맥가이버

아들이 교회 간 사이, 피아노를 치러 아들 방에 들어갔다. 머리와 손가락이 따로 논다. 지쳐서 침대에 눕는다. 신랑이 옆에 와서 나란히 눕는다. 베란다 천장이 보이고, 페인트칠이 떠 있다.

- 여보, 베란다 천장 페인트 벗겨 내고 다시 칠해야겠다.

- 응. 얼마 줄 거야?

- 돈을 받아야겠어?

- 그럼, 사람 부르면 얼만데.    

 

예전에 부엌 수돗물에서 검은 가루가 나온 적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전의 고무 부분이 오래되어 떨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싱크대 수전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신랑이 교체했다. 그때도 신랑은 얼마 줄 건지 물었다. 그때 얼마 줬더라? 3만 원? 5만 원?     


친구들과 신랑의 싱크대 수전 교체와 공임비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신랑에게 말했다.

- 아니, 집안일을 하는 데 돈을 받아야겠어요?

- 그러면 안 되죠.

그때 친구들의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고 나서야 나도 '이상한 건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 여보, 그때 친구들이 보였던 반응 기억 안 나? 그래도 돈을 받아야겠어?

- 응. 누구나 할 수 있는 집안일이 아니잖아. 내가 아예 못했다면 기술자를 불렀을 거고, 그럼 더 많은 돈이 들었을 텐데. 내 기술도 쓸 수 있고, 돈도 많이 안 들고. 좋은 거 아니야?

- 당신 말이 틀린 건 아닌데. 일반적인 생각은 아닌 것 같아. 역시 당신은 마르지 않는 '글감' 제공자야.

- 그렇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드디어 오늘 작업에 돌입했다. 이 더위에 천장을 바라보며 하는 작업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먼저 천장에 달려있는 빨래 건조대를 떼어냈다. 그리고 베란다 천장에 커버링 테이프를 붙이고, 떠 있는 페인트를 긁어내고 그가 잠깐 쉬기 위해 옆에 앉았다. 

- 힘들지? 여보.

- 괜찮아. 근데 얼마 줄 거야?

그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공임비'를 줘야 할 것 같다.

- 5만 원?

- 콜!

신랑은 조금 쉬다가 아까보다 의욕에 차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는 용돈으로 목공 재료나 도구를 산다.)

그가 즐겁게 일하니 나도 기분이 좋다.


우리는 20년도 더 된 아파트에 들어오면서 마루 시공, 전등 교체, 베란다 타일 시공 등 많은 것을 직접 했다. 이유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였지만 하고 나니 뿌듯했고, 집에 정이 많이 갔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전원주택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기술자 신랑을 믿거라 하는 마음에. 문제가 있을 때는 언제든 달려와 맥가이버처럼 해결해줄 테니까. 물론 공짜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는 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우리 집 전담 수리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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