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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Aug 18. 2020

불고 있는 라면을 두고 맥주를 사다 줄 수 있는가?

이런 게 사는 즐거움이지

토요일 점심, 그를 위해 라면을 끓였다. 나는 딸이 사다 준 컵라면과 삼각 김밥이 점심이다. 맥주가 먹고 싶다.

- 여기에 맥주 한 캔 하면 좋겠다.

- 사다 줄까?

  빈말인 줄 알면서 넙죽 받는다.

- 정말? (감동받은 얼굴은 덤이다.)

- 정말이지.

- 당신 라면이 불 텐데.

- 괜찮아.

그가 나간다. 미안해진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좋다. 사랑받고 있는 기분이다.

5분이 지나도록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라면은 불고 있고, 나는 컵라면에 손을 댈 수 없다. 의리를 지켜야지.

그가 돌아왔다. 맥주 미니 캔 2개를 들고.

- 왜 2개씩이나?

- 다음에는 귀찮게 하지 말라고.

신랑의 말에서 농담 반 진담 반이 느껴진다. 다행히 신랑의 감자라면은 덜 불은 것 같다.

- 라면이 살살 녹네.

- 그래? 맛있어?

- 아니. 불어서.

  '엥. 뒤끝?'     


  그는 내 말을 흘려듣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상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는 나이가 들어 저절로 생긴 여성 호르몬 덕분에 아내를 배려하는 남편이 되어가고 있다. 나이 듦이 나쁜 것만은 아니구려. 팍팍했던 성격도 녹녹해지고.

  우리 둘은 불은 라면을 맛있게 먹는다. 맥주도 홀짝홀짝 마시면서. 이런 게 사는 즐거움이지 하며 만족감을 느낀다. 나 혼자 느끼는 건가? 만족해하는 날 보는 신랑도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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