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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Aug 16. 2020

목공과 식사 준비

그와 나의 낭만의 시점

목공이 취미인 신랑은 뒤 베란다에 기구를 구비해놓고 짬짬이 작업을 한다. 취미야말로 주말에 긍정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멋진 일이 아닌가?

문제는 그가 목공을 할 때 나는 집안일을 한다는 것이다.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정도 청소를 하고 나면 점심 먹을 시간,

이제 밥을 차려야 한다.


신랑은 목공을 시작하기 전에 내 이름을 부른다.

 커피 좀 주겠니?

 

이제 막 청소를 시작하려는 나와 이제 막 목공을 시작하려는 그의 마음가짐은 다르다. 나는 일을 하려 하고, 그는 여가생활을 즐기려 한다.

 

아내가 주는 커피 한 잔과 자신이 좋아하는 그 일의 조합이 얼마나 낭만적이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귀.찮.다.

 하지만 그의 낭만을 위해 커피 한 잔쯤이야 얼마든지...


청소 후, 점심을 차리면서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공동의 일을 혼자 하고 있다는 생각이 페미니즘과 결합하여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부당하다고 느끼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목공에 몰두하며 땀을 흘리고 나온 신랑이 식탁에 차려진 밥을 보며 낭만이 극대화된 시점에서 나는 화가 나 있다.

그는 도대체 이런 낭만적인 상황에서 아내가 왜 화가 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은 얼마든지 온다. 내가 화난 이유를 구차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


다행인 것은 그는 내가 얼마나 산책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즐거운 목공을 하였으니 이제 나와 산책을 하고 커피 한 잔쯤 같이 마실 여유가 생겼고, 그리하면 나의 마음이 어느 정도, 아니 거의 다 풀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동네 길을 나선다.

그리고 그와 나의 낭만의 시점이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생각한다. 합의점은 찾을 수 없으나 결국 서로에게 원하는 바를 해줄 수는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원하는 일을 하도록 허락하고, 그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다.

 

그것이 우리가 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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