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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Aug 30. 2020

아버지의 설교 말씀

아버지와 대화라니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엄마는 주말 부부셨다. 주말부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할 수 있다는데 이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5남매였고, 우리를 돌봐주는 사람은 엄마였으므로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은 아버지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 기간 동안 우리는 결핍을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자유를 느꼈다.) 아마도 엄마가 다 채워주셨거나 아버지가 옆에 계셔도 채워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결핍감을 느낀 건 엄마였겠지. 엄마는 아버지의 월급만으로는 우리 5남매의 식욕을 채우기에도 벅찼으므로 나가서 일을 해야 했고, 돌아오면 우리를 챙겨야 했으며, 남편 없는 외로움도 맛봐야 했을 것이다.

  그 시기가 떠올라 엄마에게 힘들었겠다고 말하면 엄마는 자녀들에게 일이 생겼을 때 상의할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씀하시다가 사실 아빠가 있었어도 딱 부러지게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했을 거라는 말씀을 넌지시 하시곤 한다.


  아버지는 종교적 이론과 논리로 무장한 선생님 같은 분이었다. 다만 이렇게 말씀을 잘하시다가도 남들에게는 싫은 소리를 조금도 못하는 선비셨다.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아버지에 대한 일화가 있다.

  젊은 시절 엄마와 아버지가 짐이 많아 큰 맘먹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택시기사가 집 앞까지 태워주지 않아 시비가 붙었다. 택시를 탄 보람도 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엄마는 왜 갈 수 없느냐고 따져 물었다.


바로 그때 


아버지는 마치 모르는 사람과 합석을 하고 왔다는 듯이 먼저 택시에서 내리시고는 멀찍이 서서 엄마와 기사가 택시에서 내려 큰소리로 싸우는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셨다는 이야기이다. 엄마가 얼마나 서운하셨을지 짐작도 못 하겠다.


  이런 아버지였으니 자녀들에게도 정을 표현하는 일이 쉽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를 키우며 애써주신 건 8할이 엄마였다. 언제나 애틋하고 감사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보니 아버지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신랑이 아이들에게 마음과 정반대로 표현하는 걸 보면 아버지도 그저 표현이 서툴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우리 5남매에게 묻는다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버지 하면 설교 말씀이지

  아버지의 종교는 '천도교'이며, 이것은 '동학'이 종교가 된 것이다. 천도교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인내천)'라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아마도 사회시간?) 할아버지와 아버지 외삼촌의 종교도 천도교였고, 아버지는 그분들의 영향을 받았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종교를 물어보면 오로지 나만 ‘천도교’였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천주교’로 오해하시곤 해서 그냥 포기하고 천주교인 척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주말 부부가 되기 전, 밤 9시가 되면 '청수'라는 것을 모셨는데 깨끗한 물을 떠놓고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주문을 외운 뒤, 아버지의 설교를 들어야 했다. 보통 설교가 시작되면 1시간에서 1시간 반 동안 말씀하셨는데 내용이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아버지는 유머 감각이 전혀 없으셨기 때문에 우리 5남매는 밤 9시가 되면 그 시간을 몹시 괴로워했다. 

  다행히 나는 막내라 8시 50분쯤 되면 이부자리도 없이 구석에 누워 잠든 척을 했다. 아버지는 깨우려고 하셨지만 엄마는 자게 두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내가 안자는 것을 아셨을 수도) 어쨌든 나는 자는 척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는데 너무 지루하여 금세 잠들곤 했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와 엄마가 주말부부가 되었을 때 우리 5남매는 결핍보다는 자유를 느낀 게 아니었을까?


  사실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내용은 교리, 세상과 자연의 이치 등의 좋은 말씀이었는데 초등학생이 듣기에는 어렵고, 재미없었다. 그런 내용이 지금은 싫지 않은 걸 보면 나도 알게 모르게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아버지는 여전히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시고, 78세의 연세에도 인라인스케이트로 하체 근력을 키우시는 자기 관리의 달인이시다.     

  지금도 대화보다는 설교를 더 잘하시지만(평생 설교만 하셔서 대화하는 법을 모르신다.) 이제는 자녀들도 아버지의 말씀을 중간에 끊기도 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아버지가 조금은 대화할 마음의 준비가 되신 것 같은데 오랜 기간 큰 기계 소리에 노출되어 잘 듣지 못하신다. 그래서 지금은 듣고 싶은 말씀만 들으시고, 하고 싶은 말씀만 큰소리로 하신다.     


   이제야 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다. 일상의 대화는 아니지만 나름의 배움이 있다. 아버지와 눈 맞춤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드물게 아니라고 말할 때도 있지만) 그리고 아버지도 가끔 내 말을 들어주신다. 우리도 이제 대화 비슷한 걸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 대화라니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일생에 배움의 길을 정진해 온 아버지를 인정한다. 엄마나 자식들에게 살가운 분은 아니셨지만(지금은 엄마에게 엄청 다정하시다. 그동안 베풀지 못한 사랑을 만회 중이시다. 엄마 말씀을 못 알아들으셔서 엄마를 폭폭 하게 할 때도 있지만 그 마음만은 인정!) 아버지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래 곁에 계셔주시기를.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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