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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Sep 02. 2020

하늘을 날다

부부간의 사랑도 주고받아야 하는 법

  5가지 능력(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중 가장 원하는 능력이 무엇인지 묻는 심리 퀴즈가 있었다. 나는 단연코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골랐다. 

  그런데 해설이 웃겼다. 그것은 성적으로 자유롭고 싶어서 그렇다나? 내 비록 여러 사람과 자유롭지 못하나 신랑이 있지 않은가?


  생애 첫 유럽여행, 빚을 다 갚고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다녀왔다. 환승하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저렴한 숙소를 잡고, 작은 차를 렌트하며, 어떻게든 경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스위스 체르마트에서의 패러글라이딩이었다.

  날씨가 좋은 날 찾아갔으나 오전에 구름이 많고, 예약한 사람들 우선이라며 대기하라고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애가 탔다. 어제 숙소에서 신랑에게 말했다.


여보, 다른 건 몰라도 패러글라이딩은 꼭 하고 싶어. 이번 여행의 목적이자 이유야. 


  나만 애가 타는 게 아니었다. 아내의 행복이 본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신랑은 패러글라이딩 업체에 전화를 했다. 여행에서 영어 담당은 나였는데 얼굴 보고 하는 영어보다 어려운 전화 영어를? 의기소침해하는 나를 보다 못해 그가 나선 것이다. 우리가 있는 장소를 말하고 꼭 타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나는 안다. 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그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사명인 양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 또 감동을 받고, 이후 그가 하는 다양한 일들(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부부간의 사랑도 주고받아야 하는 법이다. 


  업체에서 조종사를 2명 보내줄 수 있다고 문자가 왔다. 같이 여행 온 가족 중에 큰딸, 우리 가족 중에는 내가 대표로 패러글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날 수 있다. 날이 좋아 체르마트 꼭대기가 보인다. 그것을 보면서 날 수 있다니. 행복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날아오른다. 그런데. 그런데. 사타구니가 너무 아프다. 뒤에 있는 조종사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난감하네. 패러글라이딩이라는 것이 이렇게 아픈 거라면 하늘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무렵, 조종사가 자세를 정정해주었다. 다행이다. 아프지 않다.

  나는 '더 높이, 더 높이'를 외치며 5분간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서일까? 그 자리에서 맴돌며 위로만 올라갔고, 어느 순간 손가락에 마비가. 정말이다. 마비가. 속이 메슥거리면서. 죽을 것 같았다.

  - 멀미가 나요.

  조종사는 조금만 참으라고 말하며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내려와서 철퍼덕 주저앉아 초점 없는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때 지상에 먼저 도착한 다른 조종사가 나에게 정말 높이 올라갔었다고 엄지 척을 해주었다. ‘더 높이’를 적당히 했어야 했어. 속이 메슥거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순간을 남겨야 한다는 일념이 머리를 스쳐 갔다. 셀카를 찍었다. 신랑은 사진을 볼 때마다 웬 늙은 여자가 여기 있느냐고 놀린다.   

  

우웩~     


  내가 아니다. 저쪽에서 젊은 아가씨는 먹은 걸 게워내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녀 옆엔 등을 두드려주는 연인이 있다. 내 옆에는 신랑이 없으니 나는 꾹 참아야지.     


  패러글라이딩을 마치고 온 나는 산악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신랑을 기다렸다. 그가 만면에 웃음과 씩씩한 걸음걸이로 다가온다. 나는 기진맥진이고, 그는 개선장군이다. 그에게는 아내를 행복하게 해 준 일화 하나가 더 생긴 셈이므로. 앞으로 여행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몇 번이고 본인의 미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까다로운 과제를 완벽하게 마무리한 아이처럼. 나는 그의 그런 아이 같음도 좋다.      


  누가 나에게 다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일생에 꼭 한 번은 해야 했다. 하늘을 날아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니까.

  밭에 가면 학처럼 생긴 큰 새들이 있다. 그들이 날아가는 우아한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저렇게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데이고도 또 하늘을 날고 싶다니. (인간아...)

  다음엔 열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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