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간을 사랑하게 됐는가의 답
참 당연한 특징인데 잊고 있었다. DC코믹스의 영웅들은 마블의 영웅들보다 '외부인'이 많다. 수장인 슈퍼맨부터 원더우먼, 그린 랜턴, 원조 멤버였던 마샨 맨헌터 등 인간 외의 존재가 많고, 그래서 배트맨이란 영웅이 더욱 빛나기도 하고.
<원더 우먼>은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대슈)에서 이미 '베테랑 히어로'로 등장한 원더 우먼의 시초를 다뤘다. 그 많은 '비긴즈' 류 영화에서 이 영화가 어떻게 빛날까, 정확히 말하면 빛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위의 특징을 영리하게 이용해 색다른 느낌을 남겼다.
철저하게 '외부인'인 다이애나가 인간 세계에 발을 들이는 과정을 담으면서 양측의 입장을 모두 설득력 있게 그렸다. 다이애나의 그 신화적인 신념도 그의 어린 시절부터 묘사해가며 그의 믿음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했고, 반대로 관객이 '인간'이기에 다이애나의 신념이 허황되고 그로 인해 어떤 일들이 생길지 조마조마하게 하는 맛이 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을 코미디와 갈등 모두 사용하면서 다이애나가 변해가는 모습을 영화 내내 풀어내 '원더 우먼'이란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충분한 설득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치열함보다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택한 영화다 보니, 그 모든 걸 살리기 위해 악역의 포스가 엄청 떨어지는 편이지만.
사실 북미 쪽의 호평만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긴 러닝타임 대비 영화를 끌고 나가는 갈등과 긴장감이 부족해서 알차단 느낌은 적다. 갈등에 대한 미스터리도 적을뿐더러 본격적으로 '원더 우먼'으로 활약하는 게 한참 뒤인지라 <배대슈>에서 내내 쿨하고 여유 있는 모습은 아쉽게도 거의 없다.
액션 장면도 캐릭터의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것엔 성공했지만 <배대슈> 원더 우먼의 호쾌하던 느낌과는 거리가 좀 멀다. 다만 다른 영화들이 추구하는, 아귀가 맞는 액션은 아니기에 마음에 들었다. 코믹스의 액션을 영상화한 듯 중간 중간 포인트를 강조하고, 상황에 따른 여러 가지 구도 묘사가 <원더 우먼>이란 영화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이 영화의 최대 수혜는 역시 갤 가돗일 것이다. <배대슈>에서도 진주인공 취급받을 정도로 멋진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 영화에선 더 다양한 매력을 한껏 드러냈으니까. 스티브 트레버를 맡은 크리스 파인이야 '스타트렉' 시리즈나 <로스트 인 더스트>만 봐도 이제 작품을 참 잘 고른다고 믿을 만하다. 이 작품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다들 망작이라 하는 <배대슈> 쪽이 좀 더 취향인 탓에, <원더 우먼>은 다소 밋밋한 맛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 시대를 그리며 은근히 '차별'에 말하는 것, 배우들의 매력을 백배 살린 것, 거기에 차별화된 '비긴즈'라는 점에서 DC의 도전은 성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