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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Aug 29. 2022

0. 밤이 되면 떠올라서

자려고 누우면 생각이 많아지는 게 현대인의 숙명이겠지만, 그래도 매번 같은 생각과 같은 문장이 떠오른다면 그것을 털어내지 않을 수 없다. 눈을 잡으면 뭔가라도 써야 하는데, 싶어서 속으로 몇 번이고 나만의 글을 써 내려갔다. 매일 밤 반복된 그것은, 어느 순간 정말 같은 글을 읽기라도 하듯 비슷해졌고 닮아갔으며 유사해졌다. 그래서 결국엔 그게 된다. 이 글을.


나는 아주 예전부터 글을 쓰는 걸 좋아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냥 집에 책이 많았고, 그래서 읽었고, 그러다 보니 쓰는 게 좋아졌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활동적인 뭔가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걸 선호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초등학교 때부터 작문 과제가 좋았고 남들이 시키지 않아도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여울 따름인) 단편을 쓰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중2병이 찾아왔을 때, 때마침 한국엔 싸이월드가 유행했으니 나는 나만의 공간(이라고 착각한) 곳에 글을 쌓았다. 그건 중2병에서 끝나지 않고 고딩, 대딩이 돼서도 이어졌다. 다만 그 장소만 싸이월드가 아니었을 뿐. 속에서 쌓이는 감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 어색한 난 내 나름의 활자에 실어 보내려 했다. 그것이 남들 눈에는 별난 거나 창피한 짓인지도 모른 채.


어쩌면 그때부터 꾸준히 남들을 위한 공감의 글을 썼으면 지금쯤 저서 하나 정도는 냈을지도. 하지만 나는 정말 내 감정을 삭이기 위해, 숨기기 위해, 승화하기 위해 썼고 그건 누구에게도 이름을 걸고 보여줄 것은 아녔다. 보여줘야지 생각했을 때는 지금처럼 공감의 에세이가 부상하지 않은 시기였기도 하고. 이런 글들이 별난 행동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아니면 더 이상 내 감정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닌 걸 알았을 때부터, 혹은 내가 사실은 남들보다 더 평범한 존재라서 내 생각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내 마음은 찰나의 것이 돼 글로 남지 않았다. 내 안에서 불씨가 되었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졌을 뿐이다.


글을 쓰는 걸 직업으로 삼게 되면서 글은 더 이상 내 여유시간을 들일 소일거리가 아녔다. 글을 쓰고 월급을 받고. 그렇게 일과를 마치면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거나, 어쨌든 글은 더 이상 내 일상에 파고들 길이 찾지 못하고 서성였다. 틈만 나면 뭔가를 쓰던 내가 일기나 메모도 하지 않고 감정을 단어에 담지도 않고 그렇게 살아갔다. 이상하긴 했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많은 변화를 겪고 환경이 바뀌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을. 할 수 있는 건 글 쓰는 것이고, 그동안 밤마다 마음에만 썼던 걸 털어내야 적어도 마음이 변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일단 이렇게 써본다.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목표는 아주 얕은 책이라도 될 만큼의 분량을 쓰는 것이다. 목적을 이루지 못할 거면 시작을 안 하는 나로선 벌써부터 지친다(내 마음속에선 A4 20장은 되는 것 같았는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비워내야, 달라진다.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봤다. 내가 책을 낸다면 서문, 혹은 작가의 말은 무엇을 쓸까. 그래서 일단은 이렇게 쓴다. 서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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