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이라서 언젠가 내 책을 낸다면, 그것이 문학이 아니라 나로서 쓰는 책이라면 첫 글은 무엇으로 채울까 상상한 적이 있다. 예전엔 이런 거, 저런 거 기웃거리며 고민을 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책의 첫 글은 무조건 이걸로 써야겠다 마음먹었다. 서른 살 생일에 겪었던 일이다.
내가 서른 살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다 같이 해외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짜고 있었다. 가족 중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여행이었기에 나도 당연히 참석할 예정이었다. 여행이라면 응당 들뜬 마음이 앞서기 마련인데, 출국일자를 받아들었을 때 나는 목 뒤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출국일은 내 서른 살 생일이었다.
나는 항상 '서른 살이 되면 죽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하필 서른 살인지는 차차 이야기하고, 사실은 그렇게 할 자신도 없으면서 그저 주문처럼 서른이 되면 하고 마음에 품고만 있었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차에, 해외로 출국하는 날이 마침 서른 살 생일이라니. 나는 숨 쉬듯 곁에 두었던 명제가 이제야 깨어나 내게 인사를 건넨 건 아닌지 불안감에 빠졌다.
출국일이 다가오기 전까지 친한 친구에게 남길 유서를 몇 번이고 마음에 적었다. 차마 활자로 옮기지 못했다. 나의 바람이 가족들에게 해가 된다면, 그 글자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죽음을 맞이할 각오를 하는 거야말로 위험한 것이 아닐까. 무섭고 두려웠다. 공항에서 들뜬 마음과 겁이 뒤섞여 눈썹이 떨렸다. 비행기에 탑승하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륙을 기다렸다. 그런 내 불안한 시간들이 무색하게 여객기는 타국의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서른 살이 되면 죽어야지'라는 마음은 두 가지 이유에서 서른 살을 기점으로 삼았던 거 같다. 하나는 대학교 동기 형의 지인 이야기였다. 그 지인은 연기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때때로 "서른 살까지 인정받지 못하면 이 일을 관둘 거야"라는 말을 했단다. 다른 하나는 서점에서 본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라는 서적 때문이었다. 이 두 가지 전혀 다른 명제는 서른이란 공통점을 경유해 하나로 결합했고, 내 안에 반드시 이뤄야 하는 숙원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
물론 그때에 난 저런 생각을 자주 할 만큼 절망하곤 했다. 지금으로선 무척 어처구니없는 이유지만, 당시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한다면 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모토가 있었다. 20대의 끝자락까지 사랑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원히 내게 오지 않으리라. 그렇게 성급하게 결론 내렸다. 삶과 죽음의 무게가 공평한 것도 아닌데, 그것이 아니라면 저것이라는 양분이 인생을 보는 태도가 돼있었다.
어쩌면 죽음을 갈망하는 듯한 자세는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부유한 편이 아녔지만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삼시세끼 중 하나도 굶지 않았고, 가족들은 나를 아꼈다. 그런데도 유년기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사라지고 싶다, 죽고 싶다, 없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굉장히 자주 했다. 조금만 힘든 일이 있으면 도망치고 싶었다. 중학교에서 심리검사를 할 적에 '죽고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문항이 아니라 '한 번도 없다'는 답안에 충격을 받았으니 말 다했다.
이렇게 죽음을 숭배하는 나 자신을 가장 절감한 건 한 지인의 질문이었다. '자식을 갖고 싶어?'라는 참 평범한 질문. 그런데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결코 삶이 온전한 즐거움으로 차거나, 혹은 모든 고통을 감내하더라도 견딜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단 걸. 내 자식이라면, 내가 그랬듯, 주변의 환경과 상관없이 분명 삶이 버겁게 느껴지란 걸. 그 평범한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며 비로소 삶이 내게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깨달았다.
그런 내게 서른 살 생일이 별 탈 없이 지나간 건 별 거 아녔지만, 별 일이었다. 통과할 때나 그 이후에도 아무 일 없었다. 물론 그저 내가 정한, 상상 속 결승선이었을 뿐. 아무 일도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죽거나 사라지거나 그에 준하는 걸 상상하며 정한 결승선을 통과할 때, 그 안도감은 긴 잔향을 남겼다. 앞으로도 내가 상상하고 결정하는 어떤 지점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할 뿐이다. 그 시절 자신의 약속대로라면 여전히 사랑받지 못한 나는, 스스로 소멸하길 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날이 지나고 '거 봐' 하면서 괜찮다고 등을 떠밀고 있는 것도 나였다. 그뒤에도 무서워서 죽지 못한 채 서른 살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그럭저럭 제 몫은 해가며 땅에 발 붙이고 있다. 야심에 찼던 나는 없지만, 그날그날 하루에 순응하며 터벅터벅 걷는 내가 있다. 그거면 족하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덧. 오랫동안 생각한 글이어서 지난주부터 쓰려고 마음먹었는데, 일주일가량 잔병치레를 하느라 이제야 쓴다. 그런 생각 그만하라고 누군가에게 혼이 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