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이야기에 무너진 콘셉트
장르물을 좋아하는 탓에 조금 특이한 콘셉트의 영화만 나오면 대번에 끌리곤 하지만, 이상하게도 <혼숨>은 그렇지 않았다. 딱 봐도 아는 배우를 데려다가 '실화'라고 속이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BJ나 공포 소재에 대한 거부감인지 몰라도 그렇게 딱 오는 감이 없었다. 그리고 영화를 본 후 그게 '촉'이구나 느꼈다.
<혼숨>은 아프리카라는 플랫폼을 꽤 잘 사용하긴 한다. 일반적인 모큐멘터리와 차별되는 채팅창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세세하게 계획된 것을 알 수 있다. 채팅 내용도 실제처럼 꾸며진 편이고 방송 딜레이에 따라 반응들도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습게도 <혼숨>의 발을 묶는 건 그런 '인터넷 방송'이란 형식이다. 두 여고생의 과거와 여러 가지 사건들은 모큐멘터리나 인터넷 방송 하나로 응집되지 않고 양측을 오가는 느낌을 준다.
거기에 가장 불편한 것은 극 중 '혼숨'이 시작된 순간을 담은 풋티지다. 여고생 혜진의 손에서 찍힌 이 장면이 작위적인 앵글, 그러니까 발치에 떨어진 앵글로 변경될 때 그 당위성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발치에서 선영의 모습을 찍고 있는 그 장면은 장르적으로 구태의연할 뿐만 아니라 치마 입은 소녀를 향한 페티시의 일환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 순간 공포는 단절되고 불편함만이 남았다.
또한 계산된 연출이겠지만, <혼숨>에는 소위 말하는 '갑툭튀' 장면이 많지 않다. 사실 관객을 가장 손쉽게 놀라게 하는 방법인 이것의 부재, 이야기가 촘촘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혼숨>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관객에게 몰입하는 힘이 크지 않은데도 전개가 중구난방이어서 90분이란 짧은 시간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그런데 거기에 순간적으로 긴장을 주는 서프라이즈가 부재하니 나중에는 그냥 보는 것 이상의 느낌을 받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엔딩. 만일 이 엔딩을 취하고 싶었다면 극영화나 두 장르를 혼재했어야 했다. 그러나 <혼숨>은 그간 유지하던 '실제 방송'이라는 거짓말도 포기한 채 메시지를 담은 엔딩을 택했고 그 결과 관객들은 애매모호한 찝찝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혼숨>이 빛나지 못한 건 바로 그 메시지와 콘셉트에서 정확하게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그럴싸한 거짓말을 진짜로 만들지 못한 <혼숨>은 이도 저도 아닌 실험작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