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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aul Mar 24. 2017

미스 슬로운

무엇이 진짜 승리인가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 부재해 아쉽다고 느꼈던 긴장감을 느꼈다. <미스 슬로운>은 총기 규제 법안을 옹호하는 측의 로비스트인 엘리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을 중심으로 끝없이 쏟아지는 대화와 정보, 그리고 인물들의 군상을 그려내며 치밀한 긴장감을 쌓아 올려 ‘책략’의 재미를 안겨준다.  

   

미국의 헌법과 총기 문제로 시작하는 작품이기에 사실 한국 관객이라면 사전 지식이 있는지, 아니면 초반 정보량을 다 따라잡을 수 있는지가 다소 중요한 작품이다. 적어도 영화에 필요한 정보는 모두 안에 담겨있지만 그 양이 적지 않아 자칫 마음을 놓는다면 영화를 집중하기가 내심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지점을 넘어서면, <미스 슬로운>은 정말 착실하게 정치 스릴러에 필요한 모든 미덕을 보여준다. 첫 장면부터 슬로운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한 영화는 이 인물의 언행들을 나열하면서 그가 싸워나가는 장면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커다란 ‘액션’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슬로운은 로비스트이고 정치판에 놓인 사람답게 수하를 부리고 계획을 수행하며 총기 규제 정책을 승리로 이끄려 한다.     


이런 장르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정치에 맞춰서 긴장감을 자아내려 대사와 인물에만 의지하거나 반대로 이런 요소에서 모든 걸 이끌어내지 못해 억지로 액션이나 정치의 저열함에 기대기도 한다. 하지만 <미스 슬로운>은 그 저열함을 과장하지 않고 저변에 깔아 둔 채 양 진영의 수싸움, 슬로운의 치열한 일상으로 이 모든 긴장감을 잡아낸다. 인물의 성격을 담아내는 날카로운 대사들, 그런 인물들에게 집중하는 영상, 과거와 현재를 오가지만 큰 줄기를 놓치지 않는 구성까지. 정치드라마에 목말랐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밌게 볼 것이다.     


또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의 중심인 엘리자베스 슬로운이란 인물을 그리는 과정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클로즈업으로 그를 관객에게 소개하며 로비스트인 그가,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은 채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그가 미국의 민낯을 상징하는 듯 보여주다가 어느 순간 그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인물로 그린다.   

  

영화 내내 슬로운은 그야말로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이며 심지어 그런 그에게 어떤 동기가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이런 양날의 검을 가지고도 영화는 그를 철저하게 묘사하며 영화 말미에서야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남기는 여운은 의외로 크다. 이 영화는 총기 규제를 말하지만, 그것이 정말 옳게 성취했는지는 관심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서로 다를 바가 없음을 시사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 중심을 잡고 있는 일부 인물들이 짜 놓는 ‘판’이 있으며 대중이 과연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많은지조차 의구심을 표한다.     


<미스 슬로운>은 우습게도 그게 미국이고, 국가이며, 아마 전 세계의 모습일 것이란 의견을 드러낸 셈이다. 다만 그런 좌절스런 시선과 함께 극 중 슬로운과 함께 하는 이들을 보여주며 스스로 그런 인물을 보좌할 수 있는 인간이 돼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 있도록 종용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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