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외면할 수만은 없는 감정에 대해
살면서 종종 듣게 되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좋은 것만 상상하라는 충고가 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살면서 늘 좋은 것만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가 부딪히는 일상 자체가 불확실하고 만나는 상대가 불명확한데. <분노>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불순한 것'을 드러내 인간의 감정을 세심하게 짚는다.
<분노>라는, 감정을 따온 제목처럼 이 영화는 명확하고 확실한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정체가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과 그 주변의 관계들을 다룬다. 명확하지 않은 건 오해를 낳고 오해는…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수많은 의심과 묘한 갈등으로 채워진 영화는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종교극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불편한 감정의 순간들을 촘촘히 묘사해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하는 관계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전혀 접점이 없는 세 집단의 이야기는 느슨한 듯하지만 각 이야기마다 밀도가 높아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처음 이야기를 맞이한 관객은 범인이 누구일지 나름의 추리를 펼치게 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중요한 건 그 범인의 정체가 아닌 그것에서부터 시작된 감정적인 '번짐'에 집중하게 된다.
이 과정을 찬찬히 보고 있자면 <분노>가 알맞게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설을 기반으로 차분하게 채워지는 메시지, 각기 다른 배경을 하고 있음에도 일관된 톤을 유지하며 묵묵히 전개되는 영상, 그리고 각 배우들의 집중력이 돋보이는 연기까지. 과격한 이야기에도 차분하게 묘사해나가는 영화의 톤이 매 순간 크게 마음을 두드린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건 진심이 담긴 각 이야기에도 불구, 결국 과거의 사건과 범인을 그 중심에 놓아 하나의 '추리 쇼' 같은 느낌을 계속 자극한다는 점이다. 만일 <분노>의 원래 정서가 그것과 부합했다면 아마도 최고의 시너지를 냈겠지만, 극후반부에 치닫자 범인을 알고 싶은 마음과 저 상황에 몰입하고 있는 심정이 충돌을 일으키는 느낌을 받았다. 호흡 자체가 긴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가장 격정적인 감정을 자아내는 순간이었기에 영화에서 튕겨져 나오고 만 것이다.
제목에만, 혹은 포스터에만 집중한다면 이 영화에 긴 호흡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아니면 추리가 배제된 심리극이라는 것에. 그러나 단언컨대 <분노>는 배우들의 호연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고, 무엇보다 사람의 심리와 관계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여운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