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의 향기, 미지근한 영화의 재미
모난 소리일지 모르지만, <공각기동대>(이하 원작)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기대감은 거의 없었다. 원작 그대로 리메이크하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없었고, 그렇다고 할리우드 스타일의 블록버스터로 나오기엔 그 파생품들이 이미 많이 나왔으니까. <공각기동대:고스트 인 더 쉘>(이하 공각기동대)의 등장까지 제작 진행이 지지부진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공개된 <공각기동대>는 어떠냐, 그야말로 시대를 잘 저격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할리우드 SF는 <트랜스포머>나 MCU 시리즈에게 그 이름을 뺏긴 상태다. 원작이 선사했던, 그리고 매트릭스가 이어받았던 사이버펑크는 만나기 힘들었다. <공각기동대>는 다른 건 몰라도 그런 사이버펑크의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재현해 그것만으로도 SF팬들을 즐겁게 한다.
달리 말해 그 부분을 제외하면 다소 평이하다. 기계와 인간의 경계에 대해 몇 번 넘겨짚는 지점들이 있지만, 그렇게 깊게 다루지도 않고 나중에 가서는 이른바 '비긴즈' 스타일의 영웅담으로 귀결한다. 비주얼도 사이버펑크의 느낌을 잘 살렸을 뿐, <블레이드 러너>의 축축한 디스토피아나 <오블리비언>의 모던한 매력에 닿지 못한다.
이야기 자체에도 개연성이 좋지 않아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어물어물 넘어가는 게 딱 블록버스터를 만들려는 기획의도가 느껴질 정도다. 특히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클라이맥스에서 완전히 미국식 영웅담으로 마무리짓는 과정은 다시 생각해도 큰 패착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영화 외적인 문제점도 도리어 전개로 써먹는 영특함까지 보여 납득할만하다.
잘려나간 이야기 탓에 배우들의 연기도 썩 좋다고 보기 어렵다. 메이저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은 이야기의 중추에서 액션과 감정 연기를 모두 맡았지만, 거기서 그 장면에 필요한 만큼의 감정을 쏟아냈다는 자극이 오지 않아 영화 전반에 관객이 방관하는 느낌을 준다. 바토(요한 필립 애스백)는 중요한 듯 나오다가 어느새 얘기에서 사라지고, 마이클 피트는 이 모든 게 감독의 의도겠지 싶은 기묘한 연기를 펼친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여운이 감돈다. <공각기동대>는 다른 것보다 비주얼로 전하는 세계관이 강하다. 예가 적합할지 모르지만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아바타>의 평가 중 흠뻑 빠져드는 세계관이 언급되듯 <공각기동대> 역시 그 지점만큼은 충분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지금 나온 이 본편보다, 확정된 건 없지만 앞으로 나올 후속편이 기대된다. 물론 원작뿐만 아니라 '공각기동대' 자체를 섞고는 엎다시피 한 <공각기동대>로 아예 사이버펑크 블록버스터가 전개됐길 바란다. 결코 또 다른 원작 훼손을 바라는 건 아니다.
※ 자막 번역이 더 신중했더라면. 굳이 '메이저'라는 단어를 쓴 이유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