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다 해주고픈 부모의 마음
손이 작은 편이다. 평상시에 스스로 손이 작다고 느끼지도, 생활하며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도 별로 없지만 과일 깎을 일이 생기면 내 손은 작은 것이 된다. 친정 엄마가 손이 작아 과일 깎는 것을 정말 싫어하신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과일 깎는 아빠의 모습이 당연했고, 항상 과일은 남자가 깎아 주는 것이란 행복한 선입견을 내 머릿속에 장착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과일을 못 깎는 건 아니다. 별로 과일 깎을 일 없이 곱게 컸지만 어쩌겠는가 결혼하고 시댁에서는 과일 깎는 일이 자연스레 나의 일이 되었다. 시댁이라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역할 배분을 잘 지켜내어 결혼하자마자 장인어른이 과일 깎는 것을 본 신랑은 그 역할을 이어받아 지금도 충실히 과일을 깎는다. 한 번씩 투덜대는 신랑에게 "나는 손이 작아서!" 한 마디 건네고 익숙하게 칼과 쟁반, 접시를 넘기곤 한다. 요즘 신랑은 유튜브를 찾아보며 수박깍둑썰기, 망고깍둑썰기, 멜론모양내기 등 다양한 깎기 기술을 익혀가며 단순한 깎기를 너머 새로운 시도도 할 만큼 본인의 역할에 애착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신랑이 없는 휴일, 중학생 딸이 나에게 복숭아를 깎아달라고 했다. 내가 딸을 너무 곱게 키우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며 딸에게 이제 중학생이니 네가 깎아 먹을 수 있어야 되지 않겠니라고 말했다. 나는 아빠가 깎아주던 과일을 먹으며 컸고 지금은 신랑이 깎아주는 과일을 먹으면서 딸에게는 네가 깎아먹으라니! 이게 무슨 논리인가!
도전하길 좋아하는 딸은 내가 알려주는 대로 과도를 들고 삐뚤빼뚤, 껍질을 뚝뚝 끊어가며 복숭아를 깎기 시작했다. 하나를 깎고 썰어 접시에 담는 데까지 10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예쁜 모양은 아니었지만 딸은 뿌듯한 표정으로 본인이 깎은 복숭아를 혼자 맛있게 먹었다. 며칠 뒤 두 번째 복숭아 깎기까지는 내가 살펴봐 주었고, 그 뒤로 싱크대가 복숭아 껍질로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니 세 번째 복숭아는 혼자 깎아 먹은 것 같다.
어느 날 퇴근 했더니 밴드를 붙이고 남은 종이 조각들이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다. 딸에게 물으니 혼자 사과를 깎다가 살짝 베었다고 한다. 심하게 베이지 않아 다행이긴 한데 내가 괜한 욕심을 부렸나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생활의 기술은 미리 터득하는 것이 좋으니까! 지금은 조금 어설퍼도 할 줄 알면서 안 하는 것과 할 줄 몰라서 못하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한다.
추석 연휴 시댁을 갔다. 명절이라 제일 크고 예쁜 과일들로 어머니께서 미리 장을 봐두셨다. 나주 배라고 하는데 크기가 정말 아기 머리만 했다. 이 배와 비교하면 내 손은 객관적으로 작은 게 맞다. 얼른 신랑에게 쟁반을 패스했고 신랑은 심심하던 차에 일거리가 생겨 좋다는 듯 포즈를 취했다. 그걸 보신 어머니는 부리나케 "손 다치면 어쩌려고! 내가 깎을게! "라고 하시며 신랑에게서 배를 빼앗아 오신다. 객관적으로 봐도 연세 드신 어머니보다는 아들이 다치지 않고 잘 깎을 확률이 높은데 어머니는 신랑에게 한 번도 과일 깎기를 넘겨주신 적이 없다. 신랑의 본가에서 과일 깎기 도전은 이번에도 실패했다.
딸이 과일을 잘 깎게 되면 다시 신랑에게 과일 깎기를 도맡길 생각이다. 딸이 커서 배우자가 생긴다면 꼭 항상 장인어른이 과일 깎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고, 딸이 결혼하고 친정에 오면 우리 시어머니처럼 나도 절대 딸에게 과일 깎기를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딸아! 조금만 참으렴!
아들, 딸 귀히 여기는 마음, 나이가 들어도 변치 않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신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 아들 다칠까 봐 과일도 못 깎게 하는 노모의 마음에 비하면 나는 참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엄마로 보이지만 방식이 다를 뿐, 내 자식 귀하게 여기는 똑같은 부모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