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데없지만 언젠가 깊어질지도
주말 여유시간이 생기면 tvN 알쓸시리즈를 즐겨 본다. 2017년 시작한 알쓸 첫 번째 시리즈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는 패널들의 수다를 빌어 흘러가는 대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지식을 접할 수 있었다. 지금은 완전히 적응되었지만 '이런 구성으로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구나!' 하며 신선한 문화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정처 없는 수다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첫 시즌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인기에 힘입어 후속 시즌들이 연이어 제작되는 것을 보며 나와 비슷하게 이런 잡다한 지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대한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 회에 워낙 방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보았던 회차를 다시 보아도 여전히 새롭고 흥미로워 나는 이 프로그램을 여러 번 다시 돌려보곤 한다.
얼마 전 방영된 알쓸별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에서 신당동이 소개된 적이 있다. 신당동 하면 떡볶이 이야기가 당연히 빠질 수 없다. 일반적으로 음식의 기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데 떡볶이만큼은 1953년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께서 고추장을 활용한 떡볶이를 처음으로 고안하셨다는 내용이 나왔다. 내가 사랑하는 떡볶이에 대해 무지했던 나를 반성하며, 떡볶이가 100년도 안된 음식인데 우리 정서에 깊이 각인된 연유가 궁금했다. 이것저것 호기심이 피어오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가려는 찰나 옆에서 참고 보던 신랑이 아무 쓰잘머리 없는 말만 나온다며 채널을 휙 돌려버린다.
프로그램 이름이 '알아두면 쓸데없는'이니 신랑은 이 프로그램을 정말 제대로 이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쓸신잡 내용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꼽아보자면,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지금 현재에도 느껴볼 수 있는가, 거짓말을 하면 피노키오처럼 코가 커지는가와 같이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 리처드 파인만과 양자역학의 경우에도 그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직장에서 가벼운 수다 주제로도 사용하기 어려운 이야기인 것은 인정한다.
그럼에도 분명 프로그램 취지는 '쓸모없는 내용이니 다른 채널로 돌려도 됩니다.'가 아닐 텐데 프로그램 기획 의도와는 달리 보던 TV를 빼앗긴 나는 씁쓸하게 지식의 쓸 데가 있음과 쓸 데가 없음의 기준은 무엇으로 나눌 수 있단 말인지 혼자 곱씹어 본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쓸모에 의해 존재 가치를 가려야 한다면 아마도 우리 세상은 삭막함에 숨이 막혀 진즉에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잡학이라는 말을 곱씹어 보면 섞일 잡(雜) 배울 학(學), 지금식으로 해석하자면 여러 학문을 배움으로써 융복합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창의적인 배움의 방법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어학사전에 나와있는 잡학의 정의는 하나 같이 '여러 방면에 걸쳐 체계가 서지 않은', '일정한 체계를 갖춘 분야가 아닌' 지식이나 학문이라는 전제가 붙어있다. 깊이 있는 배움이 아니라 짜임새가 부족한 지식으로 치부되는 잡학! 잡학사전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애청하는 나의 지식 체계는 어느 정도일까 생각해 본다.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지식들이 꼭 체계가 잡히고 깊이가 있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당연히 '아니다.'라고 답하겠다. 잡학은 필요하다. 모든 학문의 시작은 호기심에서 비롯되고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며 통찰력을 가지게 된다. 그다음 한 분야에 집중하고 열정과 애정이 쌓이면 배움은 자연스레 깊어지고 정리되며 체계가 잡히게 된다. 다만 배움에 있어 새로운 지식이 내 안에 쌓이고 있다는 즐거운 착각에 매료되어 내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제 보니 내가 알쓸시리즈를 여러 번 보아도 때마다 새롭게 느낀 것은 지식의 분량 때문이 아니라 고민 없이 지식을 단지 즐길거리로 생각한 탓이 크다.
쉽게 단 쇠가 쉽게 식는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직접 고민하고, 직접 발로 뛰어 찾아보고 책도 읽어보며 주체적으로 쌓아가는 지식과 생각은 쉬이 없어지지 않는다. 잡학에 머물러 있던 나의 가벼움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아직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는 나를 칭찬하며 긍정해 본다. 이제 관심 있는 주제는 조금 더 파헤쳐 보리라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