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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er Nov 25. 2023

원하는 건 다 되는 공주님

본성을 따르는 긍정적인 자세 

딸아이를 키우다 보면 옷이며 벽지, 이불에 이르기까지 공주그림으로 장식된 물건과 공주들이 쓸 법한 다양한 제품들을 자연스레 접하게 된다. 아이의 일상은 숟가락 젓가락까지도 공주님이 그려진 제품으로 도배되어 있다. 아이가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것인지 사회생활에서 비롯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반복 학습의 결과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유치원까지 고집해 온 7년간의 공주 취향은 대체로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 사회적 통과의례를 당당히 치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점점 외면당한다.


나는 요즘  봄가을이면 딸아이가 외면한 '공주이불'을 꺼내 덮고 있다. 딸아이가 유치원 때 덮었던 차렵이불인데 금발의 어여쁜 공주님이 장미 정원을 산책하는 장면이 이불이 꽉 차도록 그려져 있다. 가족들은 '공주이불'을 볼 때마다 궁상스럽다며 버리라고 한 마디씩 한다. 선명했던 색상은 십여 년이 되어가자 색이 바랬지만 유아용으로 나온 이불이라 좋은 면을 사용했는지 몸에 사각사각 닿는 촉감이 좋아 아직까지도 잘 덮고 잔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지금만큼 일상에서 늘 사용할 수 있는 공주 상품들이 다양하지 않았다. 여유 있는 집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를 비롯해 주변 친구들 역시 공주 벽지로 꾸며진 개인 방을 갖고 있지 않았고, 공주 이불을 덮고 자지도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공주님을 접하는 건 동화책과 만화, 종이놀이와 색칠놀이, 인형놀이와 같이 일상에서 벗어난 놀이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공주 캐릭터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 나잇대에 하는 일상적인 놀이의 소재로 단순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반면 요즘엔 백마 탄 왕자님과의 행복한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공주 이야기는 미모지상주의, 주체의식부족, 인종차별 등 여러 의견으로 지탄받기 일쑤다. 특히 디즈니 제작 만화나 영화는 그러한 비판을 피해보고자 다양한 공주 캐릭터를 선보이며 사회적 흐름을 반영하려 부단히 애쓰고 있다. 분명 예전 공주 이야기 보다 주인공이 진취적이고 용감하며 주체적인 성격으로 강하게 부각하는 내용들이 많아졌다.  


한참 전 이미 유치원을 졸업한 딸이 있는 엄마 입장에서 되짚어 생각해 보면, 인간이 원하는 바를 본성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때가 바로 그 시기인 것 같다. 길어야 7년, 공주 캐릭터가 가진 미모와 부, 사회적 지위를 적나라하게 갈망하는 나의 모습을 누구에게나 보여도 안전한 시기이다. 어린 딸에게 앞으로 주체적 인간으로 살아야 하니 '공주 캐릭터는 안돼!'라고 이야기할 부모가 얼마나 있겠는가! 나는 유아기 때에만 누릴 수 있는 공주님 특권을 존중해주고 싶다. 


공주 캐릭터가 여자 아이들의 잠재의식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공격받고 있지만 결국 어른들도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공주님들이 갖춘 요소들을 동경한다. 사람들은 내가 되어보지 못한 성공한 기업가, 재벌집 딸과 며느리, 유명한 연예인, 저명한 전문가가 가진 미모, 재력, 가문, 능력을 부러워한다. 단지 아이들과는 다르게 속마음을 꼭꼭 숨기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원하는 본성을 표출하기도 한다. 


아름다워지고, 부자가 되고,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뛰어난 능력을 갖고 싶은 인간의 본성은 나쁜 것이 아니다. 유아기 때와 달라진 점은 나는 어른이고 어린아이와는 달리 본성에 따라 나를 바꿔볼 의지를 가지고 상황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원하는 바를 '나는 지금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하는 생각으로 부러워만 하고 마음 깊숙이 묶어두고 나오지 못하게 억누르면 병이 된다. 우리는 어른이니까 원하는 바를 당당히 말하고 행동하면 된다. 

         


공주이불을 덮으면서 "엄마는 이 공주님처럼 예쁘고 행복한 삶을 살 거니까 너네가 잘 협조해줘야 해!" 가족들에게 선언한다. 매일 아름다운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운동도 하고, 출근해서도 최상의 능력을 발휘해 보고자 고분군투 한다. 공주님처럼 나도 원하는 것은 다 이룰 수 있으리라 긍정하는 믿음이야 말고 공주님 동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 공주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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