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ther Oct 25. 2023

내 차를 앞지르는 트럭

과거로 미래를 예단하지 않기

순천완주 고속도로는 편도 이차선인 데다 하행선은 여수, 광주를 향하는 물류가 많은 탓에 끝 차선은 트럭들이 일렬로 주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 덩치가 큰 덤프트럭이나 컨테이너 운송차량, 5톤이 넘는 화물차들이 내리막에서 가속이라도 붙으면 어느샌가 무섭게 내 차 뒤를 쫓아오는 느낌에 종종 백미러를 보고 움찔하기 일쑤이다.  


비가 꽤나 많이 오는 날 출장 때문에 순천완주 하행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초행길인데 비까지 오고 있어 마음도 눅눅해지는 것 같았다. 그날도 대형 트럭 한 대가 이차선으로 주행하던 나를 뒤쫓아오다 일 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하며 나를 추월하여 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트럭은 그 후로도 앞서 가는 몇 대의 트럭을 앞지르기하며 질주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 큰 트럭이 너무 위험하게 달리는 것 같단 생각을 하며 나도 천천히 달리는 트럭들을 몇 대 추월하다 보니 결국 문제의 그 트럭 뒤를 다시 달리게 되었다.  


조금 나란히 달리다 보니 오르막 길에서 트럭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고, 그 트럭은 고속도로에서 천천히 간다는 신호로 통용되는 비상등을 켰다. 이제 추월해야겠구나 마음먹은 찰나 갑자기 트럭이 차선을 물고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주행하기 시작했다. 비는 주룩주룩 오는데 속도도 내지 않고 비상등만 깜빡이며 비켜주지도 않은 채 고속도로 한가운데를 달리는 트럭!  아니 이게 무슨 행패인가 싶어 욕이 나왔다. 나까지 차선을 물고 가운데로 갈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이차선으로 트럭을 졸졸 따라가다 보니 아뿔싸! 일 차선에  빗길에 미끄러진 차 한 대가 중앙가드레일을 들이박았는지 찌그러진 채 역방향을 쳐다보고 있다. 그제야 문제 트럭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내가 트럭을 추월하려고 일 차선으로 움직였다면 그 차량과 부딪혔거나, 사고차량을 보고 급하게 다시 차선변경 하면서 큰 사고가 났을 것이다. 트럭은 내가 추월할까 봐 일부러 차선 가운데로 주행하며 막아준 것이었다.


고속도로에서 고마움을 전할 경황도 없었고 그 당시에는 정확히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는데, 그 순간을 다시 곱씹어볼수록 그 트럭 기사님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고속도로를 위험하게 마구 달렸던 기사님과 위급 순간에 빠른 판단과 기지로 큰 사고를 막아 준 기사님이 같은 분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누적된 경험적 직접 정보와 여기저기서 수집한 간접 정보를 바탕으로 매 순간 빨리빨리 판단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특히, 사람에 대하여 첫인상만 보고 누구는 어떨 것 같다던가, 한 가지 행동만 보고 누구는 그럴 줄 알았다와 같이 단정 짓는 경우도 많다. 나의 좁디좁은 경험과 머릿속에 필터 되어 남아있는 주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능력은 인간이 가진 축복이자 한계일 것이다. 많은 정보를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가공하여 수많은 사안에 편하게 잣대로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앞선 상대방의 행동에 비추어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높을지도 모르지만, 예단은 금물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줄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그 순간, 함께 급변하는 요소들이 있고 낮은 확률이라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과거는 과거일 뿐 미래의 가능성은 항상 오픈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협소한 판단이 아니라 긍정적인 결말을 기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모든 일이 나의 섣부른 판단과 같은 결론이 날 것이라는 오만보다는 변수로 춤추는 결론을 즐기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빨간어묵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