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을 돕는경험적 데이터
직장동료 결혼식이 충북 제천에서 있었다. 예전 초보운전 시절 제천 출장 갈 일이 있었는데 장거리 운전 도전이 두려워 전주에서 대전, 대전에서 제천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더니 편도 5시간, 왕복 10시간이 걸렸던 악몽이 떠올랐다.
전주에서 제천까지 차로 이동하려면 3시간, 주말이라 차가 막힐지도 모르고 하루 왕복 6시간 운전은 초보운전을 벗어난 지금도 체력적으로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갈 수 있는 동네가 아니니 가족여행 겸 1박 2일 같이 다녀오자고 가족들을 설득했으나, 토요일 아침 7시 출발이라는 말을 듣고는 머리가 다 큰 아이들은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고심하던 차에 다행히 마음 맞는 직장분과 숙소를 잡아 1박 2일 여행 삼아 움직여 보기로 했다. 가족들을 버리고 나만의 주말여행이라니! 생각해 보니 결혼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중에 출장으로 하루이틀 집을 비우는 경우가 있긴 했어도 나만 따로 주말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오랜만에 완전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설레었고 여행 코스를 짜고 짐을 챙기다 보니 결혼식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제천 안에서도 차로 움직이려면 피곤하니 제천까지는 기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전주에서 출발하는 기차 시간이 맞지 않아 익산에서 오송으로 KTX, 오송에서 제천까지 무궁화호를 탔다. KTX가 생긴 이후로 무궁화를 탈 일이 잘 없었는데 오랜만에 탄 무궁화호는 좌석 사이 간격이 넓어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 무궁화호는 청록빛 잎이 싱그러워 보이는 대파 밭, 빨간 고추가 드문드문 어여삐 달린 고추 밭, 고개 숙인 황금빛 이삭이 일렁이는 논이 철로 옆에 가까이 붙어 있어 차창을 스치는 풍광을 바라만 봐도 시간이 훌쩍 지나는 것 같았다.
기차가 10분 정도 연착하여 결혼식 시간이 빠듯한 탓에 일단 제천역에서 택시를 탔다. 예식장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여쭤보니 택시 기사님께서 낯선 타지인들에게 호기심을 보이시며 인구 13만 제천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시작하셨다. 마침 제천역 앞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걸 보고 오늘 오일장이니 꼭 들러보라고 추천도 해주셨다. 오일장 구경 할 일이 흔치 않으니 결혼식 끝나고 들러보기로 마음먹고 무사히 결혼식 참석 일정을 소화했다.
역시나 오일장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은 먹거리다. 메밀배추 전, 메밀부꾸미, 닭강정 등 낯선 모양새지만 맛있어 보이는 지역 먹거리와 맥반석 반건조오징어, 즉석 어묵 등 불변의 맛있는 먹거리들이 즐비했다. 그중에서도 분식집 떡볶이 옆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시원한 국물의 꼬치어묵 대신 자리 잡고 있는 국물이 별로 없는 빨간 어묵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1인분 기본 4개인데 우리가 가늠을 못하고 망설이자 이모님께서 눈치껏 2개를 더 담아 주셨다. 비닐이 씌워진 스티로폼 사발면 그릇에 빨간 어묵 꼬치 6개가 담기고 포장이 마무리되나 보다 싶은 그 찰나 커다란 쇠국자로 빨간 양념 한국자를 어묵 위에 듬뿍 뿌려 주신다. 순간 우리 둘은 눈이 커지며 "와~!" 놀란 감탄사를 질렀다. 그제야 이모님이 "제천사람 아니에요?" 하신다. "우리 집이 역에서 가까운데 있어서 제천에서 제일 안 매워!" 새빨간 양념을 머금은 빨간 어묵이 어떤 맛일지 너무 기대되었다.
제천의 유명 관광지 의림지에서도 빨간 어묵 푸드트럭을 마주쳤고 여기저기 둘러보다 보니 이 새롭고 신선한 먹거리가 제천의 일반적인 어묵 조리법임을 알 수 있었다. 포장해온 빨간 어묵을 한 입 베어무니 매콤하고 깊은 맛의 시원한 빨간 국물이 매력적인 부산어묵과는 완전 다른 맛이다. 빨간 어묵은 어묵이 국물 어묵에 비해 불지 않아 조금 더 쫀득한 식감이고 떡볶이 양념과 비슷한 듯 다른 오묘한 맛인데 그 매운맛이 나쁘지 않았다. 오일장에서 충동구매 한 메밀 전들과 먹으니 조합이 더욱 그럴듯했다. 결정적으로 여기서 밖에 못 먹어 보는 음식이라 생각하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
제천은 언제부터 어묵을 이렇게 먹었던 것일까? 지역마다 각기 다른 특색 가득한 음식을 알게 되고, 맛보는 일은 인생에 나름의 큰 재미를 선사한다. 제주도 여행의 즐거움이 먹는 것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대부분 그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먹거리가 이색적이고 신선한 재료 덕분에 잘 알려지기 마련인데 전국적으로 공통된 조리법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던 꼬치어묵, 꼬불이어묵, 꼬치어묵의 변신이 너무 의외였다.
이전에 먹어보지 않은 새로운 식재료를 접하면 자연스레 먹어보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이미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홍어, 고수와 같이 향이 강한 식재료는 더욱 그렇다. 익숙하고 분명 아는 맛인데 약간의 다른 변형은 머릿속 불호를 넘어 호기심으로 바뀐다. 호기심은 위험부담이 없다는 판단에 이르고 쉽게 도전하게 만든다. 식재료만 머릿속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새로운 도전 역시 해보기도 전에 이미 선입견으로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도전을 통해 기회를 잡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미 내 안에 다양하고 많은 경험적 데이터가 쌓여있어야만 한다. 선입견이란 장애물을 넘어 새로운 도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도전을 또 다른 경험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도 작고 소소한 경험을 의도적으로라도 시도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