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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er Oct 18. 2023

인터뷰하고픈 사람이 생기는 행복

오아시스 피부과 찾기

미용에 큰 관심이 없는 나는 피부과 시술에 딱히 관심이 없다. 주변분들이 나이 들면 주기적으로 다녀야 한다며 권유해 주어도 자연스레 나이 드는 것이 좋다며 한 귀로 듣고 흘리고 만다. 주워들은 바는 있어 지나가다 보았던 우리 동네 피부과 대부분이 미용 시술만 전문으로 한다고 알고는 있다.


어느 날, 오른쪽 눈 아래쪽에 뾰루지 같은 것이 작게 생겼다. 여느 때처럼 이내 생겼다 사라질 것 같아 조금 더 커지면 빨리 짜고 소독하면 되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보니 열흘쯤 지나자 요 녀석이 피부 안쪽에서 점점 딱딱해지고 커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그래! 빨리 커져서 세수하다 스쳐 자연스레 터지면 좋겠다.'라고 편하게 생각했다.


그러고 며칠 뒤, 기억을 자세히 더듬어보면 그 무시무시한 녀석을 인지한 지 스무날쯤 분명 안에서 부풀다 폭발해서 고름이 나와야 하는데 내 마음을 무시하고 안쪽으로 딱딱하게 계속 커지기만 했다. 이제는 오른쪽 눈까지 당기면서 온 신경이 이 작은 문젯거리에 쏠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트러블 전용 패치만 붙이며 버티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갈 수 있는 피부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피부에 문제가 생겼는데 주변 가까운 피부과를 못 간다는 문제 있는 현실이 참 거북했다. 정말 이 사소해 보이지만 눈에 가시 같은 문제를 받아줄 수 있는 피부과가 절실했다. 


십여 군데 피부과 중 희망의 오아시스 같은 한 곳! 토요일 진료를 보러 갔더니 진료 대기가 너무 많아 복도까지 사람이 서있다. 예약도 되지 않아 진료대기실에서 가만히 앉아 한 시간 넘게 기다리려니 자연스레 눈동자를 굴려가며 이곳저곳 살피며 분위기 파악을 하게 되었다.


번화가에 있긴 했지만 인테리어 한지 오래된 티가 많이 났다. 10년도 훨씬 전에 유행하던 금빛 앤틱스타일 덩굴무늬 몰딩이 천장과 벽 모서리마다 출입문마다 둘러져 있었고 나무로 짠 접수대가 참으로 낡았으며 벽지는 누런 빛을 띠고 있었다. 게다가 체리색 나무무늬 바닥 장판은 군데군데 색과 무늬가 사라지고 없었다. 인테리어만 봐서는 파리 날릴 것 같은데, 대기가 이렇게나 많은 걸 보니 실력은 믿을 수 있겠다 싶어 안심이 되었다.


한 시간 지나 긴 기다림에 슬슬 짜증이 올라오려는 찰나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문제의 그 녀석을 칼로 째고 고름을 빼내는 수밖에 없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신다. 칼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겁에 질려 "많이 아픈가요?"라는 상당히 일차원적인 질문을 하는 환자에게 "많이 아픕니다."라고 대응하신다.

"마취는 안 되나요?"

"마취하려면 동그랗게 주사 7번 맞고 시작하셔야 해요. 그게 더 아플걸요? 저 같으면 그냥 합니다."

"네, 그럼 한 번만 하면 될까요? 또 해야 될 수도 있나요?"

"약 먹고 연고 바르고 해 보고 다시 봐야 알 수 있어요."

무서움을 떨쳐내고자 진료실에 앉아 있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무 말이나 끊임없이 할 것 같았다.

무너져 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시술실로 이동하였다.


불치병 수술하려 누워 있는 환자 마냥 베드에 누워 있으니 어느새 오신 의사 선생님은 "무섭죠?" 한마디 건네시고는 바로 공포의 작업을 시작하신다. 생 살을 칼로 찢고 가차 없이 꾹꾹 눌러 고름을 빼는 생생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때부터 친절하게 말씀을 시작하신다. 이럴 때 보호자가 옆에 있어야 덜 아프다며 '고름 나오는 것을 보며 얼마나 나오고 있는지 네가 안 봐서 그런다. 지금 네가 아프다고 엄살을 피울 수 있는 게 아니다. 너 아픈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냐!'라며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고름 상황을 생중계를 해주는 너스레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호자 대신 쉼 없이 이야기를 건네신다.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오다가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실눈을 뜨니 빛바랜 누런 벽지가 고름색인가라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몽롱한 상태에서 드디어 끝이 났다. 지혈이 필요해서 조금 더 누워 있는데 오른쪽 뺨에 세게 주먹으로 얻어맞은 것 같은 통증이 맴돈다. 내가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충분한 시간과 너스레를 내어주시듯 한 사람 한 사람 다 그렇게 진료를 하셨겠구나 생각하니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Unsplash의Brooke Cagle

토요일 끊임없는 진료에 지칠 만도 한데, 다른 피부과들이 미용 시술로 돈 벌기 바쁜 와중에 이 피부과는 사소 해 보이지만 나에겐 심각했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감사한 생각이 들자 이것저것 궁금증이 생겼다. 진료실에서 처럼 두려움에 아무 말이나 묻는 상태가 아니라 온전한 정신으로 의사 선생님의 인생철학에 대하여, 친절의 원동력에 대하여 차근히 여쭙고 싶다. 



기회가 되면 인터뷰해보고 싶은 분이 생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친분이 있어 직접 묻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상상 속 인터뷰 만으로도 그분께 배울 수 있는 장점은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 깨달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실천하느냐라고 생각한다. 오아시스가 되어 준 피부과 의사 선생님처럼 한 사람 한 사람에 맞추어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나만의 원동력을 찾아내어 일상에 친절이 묻어 나오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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