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은 날을 받아들이는 연습
초여름이다. 나는 내 몸이 느끼는 온도를 믿지 않는다. 꼭 수치로 온도를 확인해야 하는 몹쓸 습관 때문에 다시 한번 핸드폰 날씨앱을 켜본다. 오늘 낮기온 22도 큰 숫자를 확인하고 안심한다. 할머니들은 하늘빛을 보고 몸 상태로 미루어 언제 비가 올지 귀신같이 맞춰내시던데, 나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그 경지엔 못 이를 것 같다.
출근 준비를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날이 흐릴 것 같았다. 햇볕이 없으면 아무래도 조금은 서늘하니까라는 생각에 반팔 티셔츠에 재킷을 걸쳤다. 옷을 두 겹이나 껴입었음에도 한기가 든다. 분명 22도인데.. 사무실에 반바지를 입은 동료에게 "안 추워요?"라고 물으니 눈이 동그레 진다. '오늘 너무 얇은 재킷을 입었네!' 나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했다.
오랜만에 점심 외식이다. 직장인에게 점심은 주요한 기쁨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 날은 다 같이 이탈리안레스토랑을 갔다. 본래 맛있는 집이라 여러 메뉴를 이것저것 시켜 가운데 두고 덜어 먹었다. 다들 날이 더운지 아이스 음료를 시키는데 나는 따뜻한 얼그레이 차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이 하나씩 나왔다. 리코타 치즈 샐러드에서 바질향이 유독 강하게 느껴졌다. 워낙 바질을 좋아해서 샐러드는 맛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음식들은 높은 기대와는 달리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과 달리 같이 식사하던 분들은 예전보다 간이 더 잘 맞고 맛있어졌다고 대화를 나눈다. 내가 식재료 그대로의 맛을 좋아하는 터라 나와 취향이 다른가보다 했다. 식사 막바지에는 더 싸늘한 기운이 들어 따뜻한 얼그레이 찻잔을 두 손에 받쳐 들고 마저 식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처음 들어보는 '수라향에이드'를 주문한 분이 맛을 보라고 조금 따라주셨다. 달달하고 맛있다고 하는데 한 모금, 두 모금을 마셔보아도 단맛은 커녕 시고 쓴맛이 났다. 그 반응을 보고 다들 확실히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다 나도 모르게 "코로나는 아니겠죠?"라고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이야기 주제는 갑자기 코로나로 옮겨가 다들 핸드폰을 붙잡고 검색에 몰입했다. 저희 공가 안 준다고 예전에 공지 올라왔네요, 무급 병가 쓸 수 있어요, 자가격리 의무는 없어서 출근해야 된다네요 등 여러 정보가 오갔다. 맛있는 점심자리에 영양가 없는 코로나 이야기로 식사가 끝날 것 같아 멋쩍어진 나는 "이렇게 얘기해놓고 코로나 아니면 민망하겠네요."라고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사무실로 복귀한 뒤 급한 일을 마무리했다. 오후 세시, 이젠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조퇴를 쓰고 몽롱한 상태로 한 시간 운전을 하여 겨우 집에 도착했다. 때마침 4박 5일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딸이 너무 반가워 안아주고 싶었지만 감기 옮아! 떨어져 있어! 엄마 아파서 좀 잘게! 저녁은 아무래도 죽 시켜 먹어야 될 것 같아! 라며 오랜만에 얼굴 본 딸에게 내 말만 급하게 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딸이 방문을 두드린다. "엄마, 이제 죽 시켜야 될 것 같아!" 시계를 보니 벌써 6시 30분이 넘었다. "무슨 죽 먹을 거야?" 핸드폰 배달어플을 켜고 딸에게 내밀었다. 딸은 언제나처럼 닭죽을 장바구니에 담고 사이드메뉴로 인절미를 추가로 담고 나에게 건네준다. 나는 밥이 될 것 같은 소고기야채죽과 두고 나중에 간식으로 먹으면 좋을 달달한 호박죽을 큰 사이즈로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메뉴 중에 죽 두 개 세트 할인이 있어 딸이 담아 둔 닭죽을 장바구니에서 삭제하고 닭죽과 소고기야채죽을 세트로 선택하고 인절미와 호박죽 큰 사이즈를 급하게 주문했다.
죽이 왔다. 그런데 통 안에 비치는 내용물이 온통 노랗다. 이상하다. 상황 파악을 못하고 이 뚜껑 저 뚜껑 여 닫는 엄마를 보더니 딸은 봉지에 붙어 있는 영수증을 확인한다. 영수증에는 호박죽 큰 사이즈 반반으로 나눠 두통, 세트 메뉴 소고기야채죽과 호박죽, 인절미에 인절미 별도 하나 더!라고 프린트 되어 있었다. 딸이 먹고 싶어 하던 닭죽은 온데간데없고 내가 먹으려던 죽만 가득 채워 배달이 와버렸다. 아무리 아프고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타지에서 4박 5일 있다 온 딸한테 배달밥 주면서 시켜달란 메뉴도 주문 안 해주는 팥쥐 엄마가 된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에 고개도 못 들고 딸에게 소고기야채죽을 양보했다. 여기저기 널린 단호박죽 중 하나를 골라 잡고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평상시보다 덜 달았다. 건강한 죽집인가 보네!라고 참 무던히 생각하고 몸살 기운을 달랠 종합감기약을 먹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는데 도저히 출근할 기력이 없었다. 8시 전에 신랑과 딸은 출근과 등교를 해버렸고 홀로 집에 남은 나는 미련하게 감기약을 더 먹으며 버텨야 되나, 병원을 가야 되나를 고민하며 체온계를 귀에 가져다 댔다. 38.4도 "아! 나 열이 많이 나네!" 체온계 숫자를 보고서야 나는 내 몸 상태를 인정했다.
어제저녁부터 숨쉬기도 힘들고, 앉기만 해도 어지럽고, 온몸은 맞은 것 같고, 목이 찢어질 듯 아픈데도 미련하게 '일찍 잠들어서 오래 누워 있었더니 기운이 없네! 얼른 움직여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병원이 걸어서 15분 거리니까 그 거리라도 조금 움직이면 나을 거야! 아니면 차를 타고 다녀올까? 너 지금 운전 못해! 그럼 걷는 게 나으려나? 생각보다 멀어! 가는 건 가더라도 오는 건 가능하겠어?... 병원 다녀올 방법과 내 몸 상태를 매칭하느라 머릿속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갑자기 어제 죽 배달이 생각났다. '너 지금 니 판단을 믿으면 안 돼!'
택시를 불렀다. 너무 가까운 거리라 기사님이 한 소리 하실 수도 있겠다고 각오하고 택시를 탔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마스크 쓰고 머리도 부스스한 나를 환자로 생각하신 건지 보호자로 생각하신 건지 기사님은 다행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 침묵이 어찌나 나에게는 큰 친절이던지! 택시 뒷좌석에 타고 병원 가는 길이 참으로 멀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어플 기록을 보니 탑승 3분 만에 하차했다.
병원에서는 고열을 확인하고는 바로 독감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몇 년 만에 찔려보는 콧속이 얼얼하고 머리는 본능적으로 슬그머니 뒤쪽으로 도망간다. 검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코로나네요.' 담담히 말씀하신다. 다행히 코로나와 독감 함께 검사하는 키트였나 보다. 오랜만에 듣는 단어가 낯설지만 친숙하다. '젊어서 코로나 약은 따로 안나가고 감기약만 처방되는데 문제 있으면 바로 응급실 가세요.' 익숙한 멘트다.
'내가 진짜 코로나라고?'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 생각 없이 신랑과 메신저 대화를 나누며 집까지 천천히 걸었다. 집이 가까워질 때쯤, 약국을 안 들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국까지 가려면 다시 병원까지 가야 한다. 몸이 힘들다고 말한다.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자니 멋쩍어 힘든 몸을 이끌고 반대 방향 더 먼 거리의 약국으로 터덜 터덜 걸었다. '그래, 움직이니까 좀 낫네!' 혼자 억지 위로를 하며 계획에 없던 방황을 하고서야 무사히 약을 먹고 코로나니까 아픈 게 당연해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정신없는 머리와 지친 몸을 뉘었다.
좌충우돌 자가격리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출근하며 두 번째 코로나가 지나갔다. 다행히 가족도, 점심 멤버들도 괜찮았다. 몸에 증상이 생겼던 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참 나에게 무심했고 어리석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컨디션이 나빠지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모든 일을 항상 잘할 필요는 없다. 잘 한 일도 못 한 일도, 잘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있다. 어려운 일도 쉬운 일도 있다. 그냥 그렇게 지내는 것! '아! 그때는 그랬어.' 말하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Anna Shvets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3786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