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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er Oct 06. 2023

TPO를 고려하는 마음가짐

새벽 선정릉 산책

여름비가 대책 없이 내리던 7월 서울 코엑스 출장으로 1박을 할 일이 있었다. 숙소 위치를 지도에서만 보고 골랐는데 도착해서 보니 선정릉 바로 앞이었다. 낯선 잠자리라 잠도 잘 안 올 텐데 내일 아침에 한 번 둘러볼까 생각하며 숙소에서 짐을 풀고 혹시나 출장일정으로 못 가보면 어쩌나 가벼운 걱정을 하며 검색을 했다. 다행히 사적지임에도 주민들이 자유로이 공원처럼 드나드는 장소인지 아침 6시부터 개방한다고 나왔다. 다음날 아침 비가 오지 않기를 기대하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7시 어색한 설렘을 안고 입구 쪽을 향했다. 입구 쪽 매표소로 걸어가다 보니 운동복을 입은 어르신분들이 씩씩하고 빠른 걸음으로 매표소를 거치지 않고 쓱 지나가신다. 출장이라 따로 운동복을 챙겨 오지 않아 내 복장은 어제 입었던 정장 원피스이다. 입장료 1,000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 주민들과는 달리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장소를 조심스레 탐색하며 걷기 시작했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모랫길 주변으로 길게 뻗은 나무들과 풀들이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공간을 잊게 해 줄 정도로 우거져 있었고, 곳곳에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멧비둘기들이 여유롭게 풀 숲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서울 강남 복잡한 도심임에도 사람이 없는 길에서는 차소리도 들리지 않고, 빌딩도 보이지 않아 나 혼자 과거로 뚝 떨어진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생각보다 선릉과 정릉은 떨어져 있는 편이라 양쪽을 다 둘러보면 한 시간 정도 산책이 가능하다. 사실 지하철 선정릉역을 수 없이 지나면서 선정릉이란 사적지가 있나 보다 했지 선릉과 정릉을 함께 부르는 말인지도 몰랐다.  선릉은 조선 제9대 왕 성종과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두 개의 능이고 정릉은 조 제11대 왕 중종의 능이기 때문에 선정릉 사적지에는 총 3개의 능이 있는 셈이다.


 비 온 다음날 선정릉 산책은 비록 습하고 더운 여름 아침 기온과 통기성이 떨어지는 정장 원피스의 조합으로 온몸이 땀범벅이 되긴 했지만, 피곤한 서울 출장 중에 만끽한 신선한 아침 선물이었다.


마침 8월에도 코엑스 출장이 잡혔고, 숙소도 동일했다. 다음날 아침 선정릉을 한 바퀴 산책할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한 달이 지났어도 여전히 더운 여름이니 운동복을 따로 챙겼다. 유난스레 비가 오락가락하여 숙소입실 할 때까지도 비가 와서 불안했는데, 다행히 아침엔 비가 오지 않았다. 새벽 6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매표소로 향했다.


지난번 어색함을 덜어내고 매표하려니 '주민할인 없으세요?'라고 친절히 물어보신다. 지난번과 달라진 것은 옷차림이다. 운동복을 입은 차림새가 주민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낮이라면 관광객인가 보다 할 텐데 새벽에 정장 원피스를 입고 선정릉을 걷다니! 마주치는 주민분들의 놀란 시선에 주눅 들어 최대한 사람과 마주 치치 않기를 바랐던 지난번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피식피식 나왔다. 



달라진 옷차림 하나로 사람들의 특별한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고, 나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출근 전 운동하는 주민인 것 마냥 익숙한 코스로 바쁜 걸음을 재촉하였다.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지도 않고 묵묵히 길을 따라 걸으며 주민들이 만끽하는 도심 녹지에서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흔히 TPO(Time, Place, Occasion)에 따라 옷차림을 맞추라고 한다. 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옷차림은 만나는 사람은 물론 나의 심리에도 큰 영향을 준다. 적절한 옷차림은 편안함과 자신감을 줄 수 있고 말 한마디, 태도가 달라지게 만드는 힘이 있기도 하다. 특별한 경우 TPO패션에 더욱 신경 쓰면 좋겠지만, 일상의 옷차림에도 소소히 신경을 쓴다면 내가 즐거움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확률이 확실히 높아진다. 



살다보면 비단 옷차림만 TPO를 신경써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가짐도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긍정적 방향을 모색해야 나의 일상이 수월해진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국 그 상황을 해석하는 나의 마음가짐에서 태도가 우러나오고 그에 따라 상황의 전개도 바뀐다. 결국 인생에서 겪게되는 문제들의 모든 열쇠는 나라는 사람이 쥐고 있다. 인생의 무게가 버겁기도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무게를 잘 견뎌낸 본인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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