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간에서 나를 지우기
휴직하고 보름이 되기 전에 난 면사무소에 나가서 선거사무원으로 일했다.(당시는 2020년 4월 경이다.) 나의 휴직과는 별개로 이미 짜인 일정마저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아마도 모든 것을 던져두고 나온 사람이 갖는 미안함이었다.
선거사무원으로 일을 하며 불과 보름 전에는 내가 일하던 공간은 내 존재가 많이 지워졌다.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나는 좋았다. 그렇지만 아직은 남아있던 내 흔적들을 보면서 당시의 마음이 떠올랐다.
무언가 결핍이 오는 순간에 사람은 욕구가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버린 욕구만 보게 되는 순간에는 자신의 모든 것들이 오롯이 하나만 바라보게 된다. 당시의 나도 그러했다. 하루 이틀 동안의 일탈로 끝을 보기 힘들 만큼 나의 주변은 나를 가두고 있었다.
사회복지라는 업무 자체가 나와 맞지 않느냐? 혹은 공무원 조직에 내 성격은 너무 꼼꼼한 것은 아닐지? 아니면 내 생각이 남들보다 너무 많은 것은 아닐지? 그리고 아직 내가 주변에 살아가기에는 너무 가난한가? 또 나의 부모님은 왜 이토록 병원을 갈 일이 많은지?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을 내가 생의 마지막을 하루에도 수십 번 생각했다. 말투부터 표정 하나하나에서 짜증과 분노가 터졌으며, 그마저도 어느 순간에는 해탈하게 되었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인가를 판단하기 앞서서 주변의 시선과는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이러한 순간을 탈출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도 결국에는 최선이 휴직이라는 결론에 다다르면 타인의 조언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러한 방법에 일말의 단어와 유사성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봤다. 나와 비슷한 조건에 사람들이 있다면, 이 고통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짤막한 기대가 존재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조건도 나를 상담해줄 사람도 내 주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그리고 갈망하는 순간 원하고, 남들이 말하는 무모한 생각도 서슴없이 하게 된다. 단순하게 하고 싶다가 아니라 이제는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진화하며 말하고 표현했다.
물론 타인들은 나의 갈망을 비난까진 안 하더라도 나약한 사람의 투정으로 인식했다. 부정하고 싶지만, 사회의 인식 속에서 나는 낙오자 대열에 합류하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그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냉정하게 나의 판단을 본다 해도 나는 너무 원했다.
휴직을 말이다.
그렇다고 그만두는 건 주변도 말리고, 나도 자신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사직원을 내고 그만두고 싶었다. 아니 이미 그만둘 마음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지만, 멀리 있는 길을 달려와 조언한 친구는 휴직을 차선책으로 제안했다. 아마 그 순간부터 휴직을 정말로 진지하게 고려했다. 세상 모든 고민을 혼자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 당시에 나였다.
그러한 고민을 했던 시간이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제삼자로 앉아서 면사무소 직원들을 돕고 있었다. 아무도 휴직한 나에게 어찌 지내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말끝을 흐리는 인사말만 오갈 뿐이었다. 불편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휴직이었기에 감수했다. 그 또한 내 선택이었으니까. 견뎌야 하는 것도 내 몫이려니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