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걷는다
10년 전에 내가 했던 기괴한 행동이 있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서 내가 다니던 대학교까지 걷고 싶었다. 물론 집 근처 있는 학교였다면 걸어서 가는 것이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거리가 멀었다.
전라북도 남원에서 전라남도 순천까지는 70km가 넘었다. 그래서 일단은 곡성까지 걸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길을 걸어 보고 구역을 정해서 나눠서라도 걷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서 가방에 물병과 프린트한 지도를 뽑아서 천천히 걸어갔다. 당시에는 최신이던 MP3에 음악을 담아서 멜로디를 따라서 지방 도로를 걸었다. 시골길이지만, 제법 많은 차가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사실 내가 걷는 길은 사람이 걷기 위한 길이 아니었다. 차들이 지나가기 빠듯한 시골길이 대부분이었기에 간혹 나오는 인도를 만나면 너무 반가웠다.
20대 시절의 내가 빠져 있던 것은 2000년까지는 운행을 하고 있던 곳곳에 간이역이 사라지고 이제는 폐역으로 방치되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2000년 초봄에 대학교를 입학을 위해서 탔던 통일호에 정차하던 수많은 간이역은 이름만 남게 되었지만, 기억과 더불어서 내가 그 역을 직접 보았다는 뿌듯함으로 작은 면의 간이역을 돌았다. 그렇게 이틀에 걸쳐서 나는 도로를 따라서 순천까지 걸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당시에 20대였던 나는 당시보다 몸무게가 20kg은 늘어나 있었다. 10년 사이에 나이를 한 살 먹으면서 2kg이 늘어버렸고, 아무리 운동은 못 해도 걷는 건 자신 있던 20대가 아니었다. 연습으로 가볍게 5km 정도 걷기를 시작했지만, 무릎이 아프고 걷는 것만으로 숨도 차오르고 있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어서 프린트로 뽑은 지도를 보면서 대충의 갈 길을 알았고, 차가 없었기에 없으면 걷기로 통학을 하던 순수했던 젊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차가 생기면서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님에도 운전석에 앉아 이동했다. 단순히 과거에 해봤다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일단 걸어 보았다.
아침밥을 일찍 먹고는 해가 뜨기 전에 가벼운 옷차림에 모자를 쓰고 가방에는 생수병과 수건을 챙겼다. 그렇게 집에서 출발해서 걸었다. 과거에는 해봤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그래 봐야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뿐이었다.
해가 뜨기 시작하고 차들이 다니면서 그동안 순식간에 지나온 이 길처럼 내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초반에 틀어두었던 음악도 끄고 오로지 자동차 소음만 가득한 도로 위를 걸으며 내가 왜 이렇게 걸었을까 후회하면서, 내가 왜 휴직을 했을지.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가만히 누워서 생각하던 것과 몸을 쓰면서 생각하는 것은 사유의 깊이가 달랐다. 너무나 조용한 방에서 명상하면 많은 면에서 집중하지 못하지만, 힘든 와중에 했던 생각은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곡성의 경계가 다 와서는 그조차도 힘들어서 이정표만 바라봤다. 차로 20분이면 오는 이 길을 4시간 동안 걷고 있었다.
7시에 출발했던 여정이 곡성 소재지에 들어서자 11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제 난 수제비를 먹고, 버스를 타고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제비 집을 가보니, 문을 닫았다. 그리고 곡성 시외버스터미널을 갔지만, 코로나 여파로 노선이 줄어서 내가 타야 할 버스는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막막한 순간에 난 가장 가까운 시간의 버스를 탔다. 내가 탄 버스는 광주행 버스였다. 어차피 기다리는 시간에 이동할 겸 광주행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물론 도착해서는 터미널에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돌아왔다. ‘참 세상이란 변수가 많아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그렇게 나는 집에 가기 위해 지금 휴직 상황처럼 멀리 있는 길을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