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쳐 쓰다
생각해보면 휴직하고 제일 좋았던 것은, 병원을 더욱 잘 다닌다는 점이었다. 휴직을 여행에 비유하자면 멀리 떠나려고 자동차 정비를 해야 하는데, 쉬는 날 정비소를 방문하니 견적이 엄청 나온 상황과 같았다. 게다가 수리 기간도 하루 이틀 정도가 아닌 난감함까지.
일단 휴직의 시작은 마음의 정비였다면, 이러한 기회가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내 몸을 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불어난 살을 빼려고 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방구석에서 누워만 있어야 할 판이었다.
우선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상담도 받아보고, 지난 건강검진에 조심하라고 하던 성인병 초기 증상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오랜 스트레스로 피부 발진 등이 심한 상태라서 피부과도 가야 했고, 미루던 치과 스케일링을 하러 갔다가 어금니가 썩어서 신경 치료도 한 달은 치료를 진행했다. 그렇게 30대 젊은 남자가 달력에 꼼꼼하게 일정을 점검하며 병원 탐방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달력에 빈 곳 사이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전주로 병원 진료했기에 두 달은 일주일에 4일 이상 병원을 방문했다.
휴직 중이라 각종 병원비가 부담되긴 했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어쩌면 평생을 두고 이런 시간이 없을 것인데, 내가 하는 것은 병원 진료라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좌절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많이 내리던 평일 오전에 피부과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을 갔다. 나이가 제법 되시는 약사분이 나를 보시더니 젊은 청년이 출근도 안 하고 자주 병원에 다니고 있어서, 짠해 보였던지 음료수를 한 병 내어주셨다. 왜 건강에 좋은 유리병으로 된 음료수 말이다. 그렇게 어색하게 음료수를 마시면서 약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음료수와 더불어 친절하게 피부에 좋은 습관이나 연고 바르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눈에서는 연민의 모습이 보였다. 딱히 이 약국을 오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몰려있는 병원에서 수많은 병원에 처방전을 들고 이곳을 와서 약을 타가니 내 모습이 약사 분도 익숙해진 것일 테지. 각각의 병원은 따로 가지만, 나는 약을 타기 위해서 나이 지긋한 약사분을 일주일에 최소 2번은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문뜩 내가 들고 있던 약봉지를 생각해봤다. 목을 넘어가는 알약들이 말해주듯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히도 혹사했던 지난 시간에 나를 반성하며 할 수 있었던 것은 휴직이었고, 병원에 다니며 고장 난 몸을 고쳐 쓰는 것뿐이었다.
휴직을 결심했던 이유도 이러한 눈치에도 굴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눈치를 과감하게 무시하고 나를 위한 선언이었다. 그렇게 휴직하기 직전까지 나는 4월 1일 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렇게 그날이 왔지만, 나는 왜 혼란스러웠을까? 그리고 이토록 내 몸을 내버려 둔 자신에게 부끄러워야 할 상황에서 할아버지 약사님의 연민이 왜 부담스러워서 약국을 나눠서 갈 수밖에 없을까?
일주일 정도 지난 나는 뭔가 확실한 의지가 없으면, 어렵게 얻은 이 기회를 알약과 병원 처방전으로 가득 차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그래서 나답게 생각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걷기’. 그렇게 난 동네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목표는 곡성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