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벚꽃 엔딩

구례의 화엄사 꽃터널을 달린다

by 이춘노

4월 3일.


무작정 드라이브가 하고 싶어졌다. 당장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과 내가 가야 할 병원 등은 다음 주 천천히 가려고 마음먹었다. 일단은 내가 지금 일을 하는 것인지? 휴직을 했는지? 일상에 혼동이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해가 떠 있는 순간에도 내가 내 방에 누워있다는 점이 어색했고, 점심 무렵에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서 우르르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다는 점이 낯설었다.

막연하게 달력을 보니 곡성 장날이었다. 근처에 갈 곳도 없는 처지에 점심을 먹기 위해서 차를 끌고 장터에 있는 유명한 수제비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섬진강 주변에는 다슬기가 유명해서 다슬기 관련 메뉴가 많다. 난 면을 사랑하는 밀덕후이다. 특히나 수제비를 좋아한다. 얇은 수제비 반죽에 파란빛 다슬기가 숟가락에 떠 올라가면 보는 맛과 먹는 맛이 결과적으로 시원하다. 그 알싸한 감칠맛을 생각하며 곡성 장날 시장을 찾았다.

혼밥을 위해서 김치와 반찬을 받아 들고 유튜브를 보면서 수제비를 먹고 있었다. 그러자 혼자 먹는 젊은 사내를 보는 시선에서 신기한 할머니들의 호기심이 느껴졌다. 모른 척 고개를 박고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국물을 떠먹었다. 그리고 시골의 장터를 한 바퀴 휘 돌아봤다. 호떡과 어묵꼬치에 엿가락 파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다 천변에 있는 그림 같은 벚나무 길이 파란 하늘과 함께 도드라진다. 문뜩 그 길을 걷고 싶어졌다. 핸드폰 사진으로 연신 그림을 담아내다가 철창에 슬픈 눈을 하는 강아지를 보고는 마음이 슬퍼져서 곡성을 떠나려고 길을 잡는데, 그날은 편한 길을 놔두고 옛 도로가 생각나서 길을 타고 들어갔다. 그런데 계속 강이 나오고 산이 보였다. 알고 보니 남원은 남원이지만, 저 멀리 대강이라는 산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좁은 도로라서 유턴도 못 하고 길을 잡아 달리는데, 어느 순간부터 강가 주변에 벚꽃 나무가 줄지어 있는 게 풍경이 너무 좋아서 그 길을 따라서 다시 내려가니 다시 곡성이다.


‘이곳도 이렇게 멋진데, 구례 화엄사 쪽은 얼마나 이쁠까?’

이런 혼자만의 생각에 곡성에서 다시 구례로 갔다. 태어나서 한 번도 벚꽃을 보기 위해서 그 근처를 가지 않았다.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번잡할 것 같았고, 아니면 일이 생겨서 꽃이 져버린 후에야 지나갔다. 그런 길을 평일에 달렸다. 나와 같은 목적으로 온 사람들도 서행하면서 차로 한 참 달려도 이어지는 벚꽃 터널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차로 드라이브하기 너무 좋은 코스였다. 생각해보니 코로나로 인해서 사람들의 방문을 꺼리는 관광지의 안내문을 보고 나서야 평소 같았다면 평일이라도 이렇게 차로 달릴 수 없었을 것을 생각하니 이렇게 차에서 보는 꽃구경이 감사했다.

질리도록 벚꽃을 보고는 주차가 가능한 공터에서 잠시 차를 멈췄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보면서 부재중 전화가 있는지 확인했다. 이러한 여유가 너무 어색했지만, 기분 좋은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공존하는 오묘한 감정을 표현하기 힘든 순간이었다. 그냥 눈을 감고 차에서 쉬면서 출근하기 싫어서 불안해하던 순간과 지금의 상황을 겹쳐봤다. 마음이 다른 이 순간에 느끼는 불안은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봤다. 업무였을까? 집안 문제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내 문제였을까?


나는 구례에서 처음으로 벚꽃 터널을 봤다. 그동안 좋은 걸 좋다고 못 하고 기쁜 걸 기쁘게 느끼지 못했다. 지금 그걸 느끼기에 나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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