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면 마음의 동의를 받아라

휴직하면 낮술에 한강 정도는 봐주기

by 이춘노

인간은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실행하기 앞서서 타인에게 확인을 받고 싶어 한다. 어릴 때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했고, 직장을 다니면서는 상사의 결재만 받으면 끝이었다. 그런데 내 인생에 관해서 중요한 결정은 결국 스스로 해야 된다. 사실은 답은 정해졌지만, 잘했다는 말을 해줄 누군가를 찾는 것이다. 보통은 신을 찾겠지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기에 교회도 천주교 성당에서 답을 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도 나약한 인간. 실질적으로 나의 인생을 통틀어서 많은 도움과 격려를 준 친구를 만나러 서울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친구와 나는 가는 길은 다르지만, 2014년을 기점으로 직장의 사이클은 비슷했다. 신기하게 내가 휴직을 하는 순간에 친구도 쉬고 있었다. 부모님과의 식사가 내 주변 안정을 위한 것이었다면, 친구를 보는 것은 내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이유였다. 20대 후반부터 술을 마시면 내가 주로 있던 서울 노량진에서 봤다. 아니면 친구가 사는 신림동, 그것도 아니면 고향에서 만났다. 그런데 이제는 서로의 거주지도 아닌 노량진으로 이동해서 만나고 있는 것은 40대를 바라보는 아재들의 감성을 투영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핸드폰을 봤다. 언제 후임자에게 전화가 올지 몰라서 10분 단위로 액정을 봤다. 물론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책도 봤지만, 아직 휴직하고 이틀도 안 된 상황에서 내 남은 업무를 툭 던지고 온 마음이 여간 편하지 못했다. 올라가는 내내 그런 소소한 걱정을 하면서 창밖을 봤다. 거의 텅 빈 객차 안에서 코레일 잡지를 보면 아직도 갈만한 여행지가 많다고 느끼지만, 코로나 시국에 용산으로 향하는 기차 좌석도 불편했다.

종착지인 용산에 내리고 노량진 수산시장 입구에서 친구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역시 술은 낮술임을 증명하듯. 두툼한 모둠회에 소주 한 병, 신라면 사리 넣은 매운탕에 소주 한 병 마셨다. 그리고 취기가 오른 상태로 노량진을 그냥 걸었다.

노량진에는 사육신 공원이 있다. 공부하면서 항상 걷던 그 길을 반백수가 되어서 다시 걸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직도 노량진에서는 나와 같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수험생들이 있는데, 휴직하고 한강을 바라보는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한강은 그대로인데, 나와 친구는 나이를 먹고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8년 전에도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노력했던 젊은이들은 점점 지쳐갔다. 20대를 거의 노량진에서 보내면서 꿈과 낭만을 그리면서 바라보던 젊은 청년은 그렇게 한강이 흐르듯이 나도 나이가 저 멀리 떠내려갔다.

2020년 4월의 계절감은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하얀 꽃잎이 날리는 노량진 골목길을 유유히 걸으며 친구와 나는 과거의 추억을 되짚어가면서 웃고는 있지만, 내 불안한 심리는 감추지 못했다. 발바닥이 아프고 지쳤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될 것 같아서 노량진 일대를 다 걷고 나서 저녁에 소주 반 병 더 마시고는 기차를 타고 돌아갔다.

아마 친구가 아니었다면, 나의 이런 심리 상태를 보면서

“이럴 거면 뭣하러 휴직했어?”하며 핀잔을 주었을 것이지만, 친구는 절친이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휴직한 나를 격려해줬다. 아마도 답정남이었던 나를 알았기 때문일까? 코로나로 하룻밤을 찜질방에서 보내지 못해서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친구를 보고 휴직을 하는 내가 마음의 결재를 받은 것 같아서 돌아가는 동안은 핸드폰을 보지 않아도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친이 필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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