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했지만 장어는 먹고 싶어

부모님과 함께 장어 먹기

by 이춘노

2020년 4월 1일. 아침이 밝았다.

전날에 직원들이 챙겨준 저녁 식사에 고량주까지 먹고는 숙취로 뜬 눈으로 본 시계는 5시였다. 당장 새벽에 눈 뜨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나는 휴직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7시부터는 자연스럽게 씻고 출근 준비 직전까지 자연스럽게 행동하고는 다시 몸에 이불을 말고 누워서 천장을 보았다. 그냥 멍하니 눈을 떠도 귀는 창밖 너머로 들리는 소리까진 막지 못했다. 원룸 밖에 출근하려는 사람들의 부산한 자동차 소리와 묵직한 쓰레기 청소차의 소음이 뒤섞였다. 9시 정각이 되어서 핸드폰에 나를 찾는 아무런 신호가 들리지 않자. 하루 병가를 쓴 기분의 휴직 첫날을 마음이 이해했다.

남들은 늦잠도 자고, 게임을 하느라 정신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을 상황에 나는 혹시나 사무실에서 올지 모르는 후임자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보다 한참 후배에게 던져놓고 온 내 업무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마도 9시를 넘기면서 사무실에는 문의하고 처리하는 민원인과 전화로 정신이 없을 터였다. 상상만으로 답답하지만, 지금 나는 원룸 방바닥에 누워서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다 나는 머릿속 불안함을 지울 첫 약속을 잡기 위해서 전화를 했다.


언제나 기운이 다하면 특식을 먹는다. 사람들이 자주 하는 행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순위로 먹는 것이 들어간다. 그런데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다. 그러니 평소에 먹지 않는 것을 먹어야 했다. 평소에는 떡볶이만 먹어도 만족했을 나였다. 물론 혼자였다면 그랬겠지만, 약속 상대는 부모님이었다.

나는 휴직이 시작되는 날 첫 끼를 부모님을 모시고, 내가 근무했던 면 경계에 있는 장어집에서 식사했다. 사실은 어머니가 장어가 드시고 싶다 했고, 우연히 그곳이 내가 일했던 면에 있었던 것뿐이지만, 그 근처에서 밥을 먹는 것은 내심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남들은 일하는 대낮에 부모님과 식사를 하는 것은 타인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우연이라는 존재도 휴직이 처음인 내가 느끼는 불안감을 아는지? 초임지 동에서 알고 지낸 통장님을 만났다. 구차한 설명 해 드리기 어렵지만, 가볍게 인사만 하고 각자의 테이블에서 식사했다.

유명한 식당임에도 역시나 평일이기에 사람들은 적었다. 아마도 코로나의 시작이기도 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평소에는 사 먹지 않을 장어를 세 식구는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냥 굽는 것도 아닌 빨간 양념에 더덕까지 올라가서 알싸한 향이 좋은 그 맛에 밥까지 비벼 먹었으니 나오는 길에 두툼한 배를 만지는 것은 당연했다.

위장도 뿌듯하지만, 내심 불편했던 마음도 조금은 차오를 것 같았다. 어떠한 이유로 자식이 쉰다는 것을 어떻게 느꼈을까? 그 휴직에 본인들의 이유가 크게 자리한다는 것도 그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장어를 먹자고 했던 어머니는 별말씀이 없었다. 다만 거의 1년간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어머니 눈앞에 펼쳐진 벚꽃 도로가 너무나 아름답다며 창밖을 보는 모습에서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생겼다. 다만 나는 조금은 천천히 운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대부분 휴직의 시작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남들은 가질 수 없는 자유를 누리면서 방탕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생각하지만, 그보다 나보다는 주변을 챙길 수밖에 없는 본인의 위치를 절감한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불안처럼 가장 가까운 누군가는 말도 못 하는 걱정을 하고 있기에 나는 그 첫 시간을 부모님에게 할애했다.

만약 누군가 휴직한다면 장어를 먹었으면 한다. 죽고 싶어도 떡볶이를 먹는 것이 개인적이라면 내 주변에 누군가와 먹는 것은 장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전 02화휴직은 하지 말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