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폐기물은
난 노량진에 버렸다

모든 것이 무거울 때

by 이춘노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에는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주로 목적지는 서울. 그냥 기분이 떠나고 싶으면 금요일 퇴근 시간에 맞추어서 용산으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시간이 어중간하지만, 대충 도착할 시간이 자정 직전 정도면 용산에서 전철을 타고 노량진을 가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정만 넘지 않으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충분히 갈 수 있었다. 혹여나 시간을 넘겼다고 해도, 신데렐라는 호박 마차가 사라졌겠지만, 심야에 운행하는 버스나 택시가 있어서 문제는 없었다.


자정에 도착한 나는 10년 전, 백수로 돌아갔다. 호박 마차는 고향 역 주차장에 주차되어있었고, 짐이라고는 가방 하나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노량진역에서 걷다 걷다 장승배기역 근처 찜질방에 도착했다. 이른바 8,000원의 행복이다. 입구를 지키는 직원은 나를 보고 큼직한 찜질복을 줬다. 3X 정도 치수에 찜질복에 핸드폰과 이어폰. 그리고 간단한 군것질을 할 돈을 주머니에 넣고 내려가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각각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적정한 온도에서 자유롭게 눕다 먹다 잠이 들 수 있는 공간은 나에게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었다.


가끔 그런 질문을 들었다. 돈도 벌면서 왜 하필 노량진 같은 곳을 가느냐고, 그것도 시끄럽고 잠자기도 불편한 찜질방에서 노숙하듯이 잠을 자는지?


“편안해.”

단순히 돈 때문이라고 하기엔 내가 버는 돈에 비해서 너무 소박한 시간이었다.

그 찜질방에서 내가 하는 것이라고는 사우나를 즐기고, 씻고 난 후에 찜질방에서 달걀 라면에 단무지를 먹으며 유튜브를 보는 정도였다. 그러다 잠들면 평소와 다르게 9시 건 10시 건 눈 뜨면 나가야 하는 시간 감각도 무뎌지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솔직히 그런 것을 위해서라면 굳이 4시간 기차를 타고 올 곳은 아니었지만, 두 달에 한 번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편하다.

편하기에 그 시간을 기다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는 불면증도 사라졌다. 고생은 했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는 곳이다. 이러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휴식이었다. 그러한 일탈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렇게 하룻밤 찜질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토요일에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시고는 바로 그날 밤에 기차를 타고 내려가기도 했지만, 다시금 하루 찜질방에서 푹 자고 내려가면 한 달을 버티거나 두 달을 버티게 되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가 터졌다. 모든 사람의 일상이 과거와 다르게 변했듯이 나의 일상도 변해버렸다. 당시에는 코로나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대구에서 집단감염으로 이제는 전국으로 퍼질 것이라는 우려가 더 컸고, 주변에서는 아직 체감되지 않는 그 순간부터 암묵적으로 이동이 제한되고, 나의 탈출구였던 찜질방은 가지 못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무겁다 느끼는 순간에 그 짐을 두고 오던 곳을 갈 수 없었다. 혼란 속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편한 곳이 그렇게 사라졌다. 혼란 속에서 버틸 곳이 사라졌다. 나는 무엇에 의지해야 했을까?


불편하다.


불편하기에 도망가고 싶었다.


다 놓고 싶었다. 그러면 참 편한 것 같다. 그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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