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생각이 없던 나의 고백
휴직을 하고 3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당장 볼 사람도 봤고, 앞으로 해야 할 급한 것들은 달력에 적어 뒀다. 외출하는 순간은 목적지가 거의 병원이었다. 그 외에는 답답한 마음에 떠나던 여행도 갈 수 없었다. 주로 방구석에서 눕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난 다시금 백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과거를 생각했다.
휴직은 내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계획성이 있는 사람이라도 돈 한 푼 없이 쉰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일을 그만두고 내가 아무것도 안 한다는 가정에서는 고민도 다르겠지만, 그 정도의 상황이라면 이런 고민은 애초에 답이 아니다.
당시의 나는 하루가 끝나는 날에 다이어리에도 담지 못할 수많은 생각을 흰 종이에 담았다.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정갈하지 못한 글자로 서너 장을 써 내려가는 것은 정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내용도 다시 쓰라고 해도 못 쓸 내용이다. 불만과 걱정과 분노가 뒤섞인 글도 아닌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지옥이었다.
그렇게 일도 아니고, 식사도 아니고, 글도 아닌 잠을 자는 순간에도 지옥은 계속되었다. 가상현실 속 생생한 고통은 날 지치게 했다. 더는 무리였다. 모든 그것을 그만두고 싶었다.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부모님이 부자라서 본인이 굳이 열심히 살아도 되지 않는다는 조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루하루 돈을 벌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주변과 똑같다.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그때의 나는 결심했다. 수십 장 쌓여있던 종이들의 결론은 그러했다. 과연 이대로 얼마나 버틸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점은 결론을 내렸지만, 그 끝을 어찌할지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절대 냉정하지 않았다. 충분히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사회부적응 행동이다. 일기에도 적지 못 할 수많은 단어에서 나는 날것 그 생태였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가족은 있으나 날 품어줄 수 없었고, 연기하듯 나는 가족을 챙겨야 했다. 몇 년 전에 수화기 너머로 혼자 부모를 챙겨야 하는 내 또래의 자녀 상담을 들으며, 함께 울고 싶었다. 얼마나 처절하게 살았으며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이었을까? 법과 규정을 들먹이며 설득하려던 나에게 그 말이 고스란히 돌아왔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러한 결론에서 난 멈췄다. 이런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사람에게도 요구하던 사람도 있었고, 기대란 걸 하는 사람이 있다. 지쳤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친구가 내려왔다.
“멈춰봐.”
“일단은 멈춰봐. 그리고 다음을 생각해.”
간곡한 친구의 부탁에 난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휴직을 했다. 다 말리는 휴직에서 나조차도 믿지 못할 말은 복귀였다. 사람이 변한다는 말. 변했다는 말은 대부분 거짓말이었으니까. 나도 나의 시간을 일이 아닌 부모님과 나를 위해서만 쓰기로 생각하고 복귀해서 보자는 거짓말을 했다. 희망도 품지 않은 그 말을 하면서 인사를 했고, 약속을 잡았다.
고백한다.
‘그때 다시 만나요’는 거짓이었다고….
나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말이다. 아마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2020년에 당장 할 것들을 적어 나가는 그것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앞으로 돈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마이너스 인생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휴직은 낭만적이지도 나를 위해서 시간을 멈춰주지도 않았다. 흘러가는 시간을 종이에 담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아니 당장 할 수 있는 그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