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를 작성하다
사람은 목적 없이 하는 행동이 없다. 그냥 무의미하게 하는 행동 속에서도 본능이 가는 대로 하는 일상적 습관에서도 목적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행위들에는 의미를 부여한다. 새해에 한 번은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책을 산다. 또 앞장에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쭉 적어 내려간다. 물론 보통은 그 내용이 전년과 그 지지난해와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아마 때에 따라서는 약간의 수치만 바뀌더라도 내용은 변함없을 것이다.
나의 2020년 신년 계획은 그렇게 같았지만, 휴직이라는 선택으로 처음으로 다른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일하면서 했던 계획보다는 뭔가 획기적이어야 하며, 나의 기회비용을 모두 털어서 9개월 이상을 투자한다면 뭔가 성과가 나와야 한다는 강박감이 또 자리했다. 누구나 그런 다급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몇천만 원의 연봉과 그 기간 지출될 생활비는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기에 내가 감당해야 한다. 아니 생활을 궁핍하게 줄여가면서도 성과를 내야 했다.
무작정 사표를 던지고, 휴직을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아마 너무 힘든 상황에서도 현실적 생활과 내 본능이 항상 싸우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생활보다는 본능이 앞서서 휴직을 결정했지만, 사람이 사는 법은 대체로 비슷하다. 휴직했다고 굶거나 집에만 있을 것도 아니기에 휴직은 현실과 매칭을 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이면서 구체적인 나의 목표는 10개가 넘으면 안 되었고, 적응 비용에 나름에 내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친구와 술 한잔하고, 무작정 꽃구경을 위해서 드라이브를 하는 일상적 주말 같은 일주일을 보내고는 책상에 앉는다.
남들처럼 해외를 가는 것으로 멋지게 살고 싶지만, 나의 통장 잔액은 늘 부족했다. 최소 경비로 살아가도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 당시에는 복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설령 복귀하더라도 빚에 허덕이는 삶은 좋은 경험을 준다 해도 나이 40대를 맞이하는 처지에서는 껄끄러웠다. 그래도 코로나 시국이라서 아예 해외나 여행은 내 목표에서 제외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역시나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휴직이 아니더라도 평상시 영구적 목표인 다이어트. 그리고 밀렸던 각종 치료를 생각하니 순서가 1번이 된다. 그리고 글을 써야 했다. 2019년에 우연히 참여한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책도 썼지만, 어디까지나 비매품 작품이었다. 그다음을 연결할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주제는 내가 제일 많이 고민했던 병원과 질병에 관한 내용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행은 해야 했기에 꼭 가고 싶었던 차를 몰고 제주도를 가는 것과 강릉을 생각했다. 해외는 무리지만,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남는 시간에는 책을 많이 읽으리라 또 메모했다.
그렇게 나를 계획해보니 휴직 후에 내 삶은 풍선에 공기가 들어가듯 빵빵해진다. 그냥 터지지 않을 정도로 후후 불어가면서 내 앞에 놔두니 뿌듯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 것 없는 풍선이고, 안에는 내 숨결만 들어가 있다. 그래도 내 살아 있는 숨결과 고뇌의 한숨을 담아 불어낸 내 계획을 차근차근 계획해 봤다. 그렇게 나는 백지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