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m를 걷는다

진정으로 동네를 걷는다

by 이춘노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사실 이유에도 공식적인 이유가 있고, 비공식적 이유가 달리 있다. 나는 걷는 것이 취미다. 그냥 무작정 걷는다. 산책의 수준을 넘어서 일단 걷는다면 5km 이상은 걸어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힘든 시기에는 그러한 걷기도 거부하면서 살았다. 정확히는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러다 보니 살이 찌고, 더 건강이 안 좋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휴직하고 나는 과거의 취미를 다시 살렸다. 아침부터 일어나면 새벽이고 저녁이고 무조건 10km를 걸었다. 늘어난 체중에서 무릎과 발목이 아프고, 발바닥도 불이 났다. 하지만 걸었다. 표면적으론 다이어트지만, 사실은 그 자체가 우울증 치료가 목적이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 날씨 좋은 날에 산책하는 수준은 모르겠지만, 지독하게 걷는 행위는 주변에서 보기에 이상하게 볼지 몰라서 그렇게 체중감량이라는 목적이라고 둘러댔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새벽에 모자를 쓰고 밖을 나갔다. 새벽 4시 반에 나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드문드문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저런 사람은 과연 어떤 이유로 새벽을 걷기로 열고 있을까?

사실 다이어트가 목적이라면 바로 산을 올랐을 것이다. 평지를 걷는다고 내가 달라지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이 들지만, 빠른 걸음으로 2시간 정도 걷다 보면, 넓은 풍경에 시선을 두고 생각이 잠잠해지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표면적으로는 살을 빼기 위해서였지만, 내면적인 이유는 생각 군살을 빼고 싶었다. 뒤죽박죽 섞인 모든 잡념을 걸음걸음마다 한 줌씩 털어내 버리고자 걸었다.


하지만 걷기도 어렵다. 일단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아니면 날씨가 따라주지 않는다. 그리고 핑계가 나를 따라주지 않는다. 생각이 많은 것도 나이고, 걷는 것도 아픈 것도 핑계를 만드는 사람도 역시 나였다. 핑계를 보호막 삼아서 이불을 감고 아침을 맞이하던 내가 그렇게 걷는다. 정말 무작정 새벽에 집을 나서서 곡성까지 걸었다. 4시간을 걸어야 하는 거리는 그렇게 다리가 더는 걷는 게 무리라고 말하는 순간까지 걷게 된다.

그렇게 난 걸었다.


나는 걷는다. 살을 빼자는 이유로 말하지만, 생각을 덜어내기 위해서 정말 무작정 걷는다. 솔직히 하루 정도 곡성을 걸었다고 모든 것이 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녀온 일주일 동안 몸살을 얻어서 진통제를 먹고 지냈지만, 역시나 시작이 제일 어려운 것이니 난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오히려 곡성보다 내가 사는 내 주변을 걷는 것이 그렇게 매일 걷는 것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코로나로 어딘가를 가지 못하는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동네를 걷고 또 걷는 반복적인 행동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사는 것도 그렇게 돌고 돌아가는 단순한 행동인데 왜 그토록 어렵고 힘들게 느껴졌을까? 문득 그러한 생각에 걸음 속도를 줄이다가 다시 돌아갈 내 집이 있기에 잰걸음으로 다시금 속도를 냈다. 가야 할 곳이 있기에 내가 이곳에 살고 있기에 나는 걸었다. 그리고 매일 같이 같은 코스를 걷게 되겠지만, 그전과는 달랐으면 했다. 아니 나는 그래야만 했다. 과연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걷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