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미래를 느끼고 싶었다

강릉의 추억

by 이춘노

내가 태어난 곳은 지리산이 있다. 서쪽의 내륙에 사는 사람은 바다에 대해 동경이 있다. 특히나 동해. 잘 가지 못하는 곳으로 강릉을 가고는 싶지만, 엄두를 내지 못한다. 2박 3일 정도의 수학여행이나 그와 비슷한 모임으로 갈 수는 있어도 운전을 해서 가기에는 너무 멀다. 아마 반대의 경우도 그렇겠지만, 나는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보이는 바다가 보고 싶었고, 강릉이라는 곳을 꼭 가고 싶었다.


수학여행도 경주나 남해 쪽으로 갔던 내가 처음으로 강릉을 갔었다. 입대 전 서울을 가면서 친척 어른들에게 용돈도 받았고, 무작정 강릉행 기차를 탔다. 정확히는 바다가 보이는 간이역으로 유명한 정동진에 가기 위해서 심야 열차를 타고 일출을 보러 갔다. 여름이 다가오는 5월 말에 바다를 보러 떠나는 사람들은 조금 있었다. 아마 평일이 아닌 주말이었다면 기차에 가득가득 사람이 많았겠지만, 다행히 내 옆자리는 한동안 비어있었다.


새벽 4시 조금 넘어서 도착한 정동진역은 너무 조용했다. 날씨가 그래도 좋아서 바다를 보고 나는 일출을 바라보며, 입대라는 큰일을 앞두고 제발 이 시간이 무사히 넘어가길 빌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근처 관광지를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기차에서 내리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서 내 옆에는 큼직한 개 한 마리가 동행했다. 시각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서 안내견을 하는 그런 품종이었는데, 신경은 쓰지 않고 바라보다가 바로 옆에 개 주인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약간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상황에서 걱정이 되어서 힐끔힐끔 쳐다봤는데, 그걸 느끼셨는지 나에게 말을 걸어주셨다. 본인은 앞이 보이지 않는데, 안내견과 여행을 왔다는 그것까진 그런가 했다. 그러다 좋은 경치를 못 보시는 게 안타까워서 혼잣말로 “경치가 너무 좋네요.” 하다가 순간 내가 실수를 한 건가 싶어 말을 끊자.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앞이 보이지 않아 경치는 보이지 않지만, 바람을 느끼고, 소리가 들리니 저도 그 경치가 보이는 거 같아요.”하고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그냥 내가 무안하지 않게 말을 해주신 건가? 그리 생각하며 난 바다를 실컷 구경했다.


정동진을 둘러보고도 아직 오전이었던 나는 내친김에 경포대를 향해 버스를 타고 강릉역까지 갔다가 경포대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면서 아까 만난 분과의 일을 떠올렸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에 다시 걷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걷고 걷기를 한두 시간 지나서 경포대 해수욕장에 다 와 갈 무렵. 소나무 숲이 있는 곳을 다다르자. 바닷가의 파도 향과 시원한 파란 물결 소리와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느꼈다. 그리고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바다구나. 너무 멋진 풍경이구나.’


그 순간 눈앞에 경포대 바다가 보였다. 나는 바다를 보고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백사장을 걸으며 이내 파도가 치는 해변의 바닷물을 밟았다. 그리고 걸을 수 있는 곳까지 걷고서 앉을 수 있는 곳에서 한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온몸으로 느낀 바다의 모습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나는 이곳을 잊을 수 없겠구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땐 꼭 이곳을 오리라.’


그리고 내가 다시 찾을 때는 입사 전이었다. 비슷했던 코스를 밟고, 나의 불안했던 마음과 생활을 이곳 경포대에 버렸다. 이제는 지질한 삶이 아닌 당당한 직장인으로 멋지게 살아보자. 그리고 다음에는 내가 직접 차를 몰고 이곳에 올려라. 옆에는 여자 친구와 함께. 그때는 그렇게 다짐을 했다. 2014년 어느 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