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했더니 수해가 터졌다

비 오는 날 응급실

by 이춘노

하늘에서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쏟아지던 2020년 8월 초. 집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매우 편찮으시다는 것인데, 불과 두 달 전에 퇴원하신 분이 어떤 일일지 몰라서 급하게 가봤다. 거동도 힘들고 화장실도 못 가실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으신데, 하늘에선 미친 듯 비가 오고 시간은 이미 저녁 9시였다.


하지만 다급한 어머니와 다르게 아버지는 그냥 묵묵하게 벽만 보셨다. 정말 어디가 편찮으신 것일까? 비를 맞으며 달려왔지만,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진료를 받아야 할지? 아니면 거동도 못 하시는 아버지를 보시고 이 비를 뚫고 간다고 해결이 될지? 일단은 아버지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만 가는 와중에 왈칵 눈물이 났다. 도대체 이 상황이 되도록 말없이 있다가 이런 최악의 상황까지 병을 키운 아버지 고집에 서러운 화가 났다. 결코, 전부는 아니지만, 지금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친 내 가족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순간엔 미안함을 두껍게 깐 바탕에 화가 있었다. 물론 나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좀 더 내가 단단한 사람이었다면, 걱정 없이 병원에 다니셨을 것을 알기에 죄송했고, 막상 터진 일에 당황하면서도 시간을 지체하는 이 순간에 눌러놨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한순간에 터졌다.

그 때문에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셨다. 내 울먹임에 아버지가 병원에 가자고 하신다. 이럴 것을 왜 그리고 고집을 피우셨을까?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응급실을 향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녔다. 응급실을 들어가는 입구에서 아버지가 높은 발열 때문에 입장도 못 하고, 격리 공간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화장실도 외부 컨테이너에 있었고, 늦은 밤에 비는 장대 같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병원마다 열이 나면 코로나 검사를 하고 나서야 입장을 했는데, 늦은 밤에 검사할 수 없으니 결과는 다음 날 오후에야 나온다 했다. 일단 아버지는 눕기는 하셨지만, 나는 아버지를 지키면서 응급실도 아닌 격리 장소에서 아버지를 지켰다. 12시 넘어서는 어머니도 택시로 보내고서는 혼자 있었다. 눕다 앉기를 반복하며 중간중간 열과 혈압 등을 점검하면서 응급실에 전화기로 알려줬다. 병원에 와서도 입원하지 않고서는 환자도 간병인도 천막이 있는 길바닥에서 기다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적막만 있는 응급실은 처음이었다. 격리된 공간에 1인실에서 있었지만, 또 다른 의미로 격리된 순간에 급박한 상황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잠도 자기 힘든 공간에서 아버지는 화장실도 못 가는 상황이었다. 처음으로 휴직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출근을 해야 했다면, 나는 수해가 터진 이 순간에 타인의 피해 복구를 위해서 비상근무를 해야 했다. 또 연가나 병가를 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공식적으로 쉬는 사람이었고, 사무실 사람들도 나를 잊고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현재는 열외이기에 내일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나의 아버지가 저렇게 힘드신 상황에서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자리를 지킬 수 있음에 차차 감사하게 생각되었다.


어제 맞은 비와 흘린 땀으로 옷에서는 이미 시큰한 냄새가 올라와 꿉꿉한 상태로 낯선 공간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몸은 피곤했고, 점심 무렵에는 어머니도 다시 오셔서 잠깐 옷을 챙기고 씻을 수 있었다. 그리고 4시 무렵에 결과가 나왔다.


“음성입니다. 입원 준비하세요.”


아마도 30대를 지내오면서 가장 긴 하루였고,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은 정말 마음먹기 달렸다는 것도 틀린 건 아닌 듯하다. 그렇게 오랜만에 병간호를 시작했다.


* 2020년 휴직하면서 쓴 글과 생각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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