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병간호

거짓된 공간의 안도감

by 이춘노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고, 시계를 봐서야 오후임을 알았다. 그렇게 남들이 저녁을 먹을 준비를 위해서 분주할 시간에 병실을 올라갔다. 아마도 그 안도감은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공간의 안심이었다.

하지만 병실을 올라간 순간에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화장실도 가기 힘드신 아버지는 그날 하루만 여러 벌의 환자복과 침대 시트를 교환해야 했다. 급하게 1층 편의점에서 기저귀와 시트용 매트를 구매했지만, 나는 5인 병실에서 새벽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지금이야 병원이 어느 곳보다 깨끗한 곳이지만, 어린 시절 의료원의 기억은 독한 알코올 냄새와 환자들에게서 풍기는 질병의 역함이 내 코를 자극했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에게 그러한 환자의 냄새가 났다.

누구보다 코가 예민했던 나는 그것이 스트레스였다. 물론 이러한 병간호가 처음은 아녔다. 입사를 위해서 고향에 내려오기 전에 나는 고시원에서 한 달 정도 살면서 아르바이트하며 서울 여행을 계획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동해를 보기 위해서 차편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사다리를 오르시다가 낙상을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짐도 싸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그리고 나는 한 달 가까이 누워서 생활하셔야 하는 아버지를 병간호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7년 후에도 이 병원 같은 층으로 입원했다. 익숙하지만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던 곳을 보호자로 지내야 했다.


물론 그사이에 병원을 다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간이침대에 누워서 새벽잠을 설치며 병간호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간이침대에 누워서 아버지의 사소한 움직임이 매트리스 삐걱거리는 소리를 통해서 들렸다. 그리고 시간마다 간호사가 오면 환자 상태 확인을 위해서 시간마다 잠에서 깨어있어야 했다. 또 아버지가 나를 급하게 찾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일이었으니 당연히 일어나야 했다. 나는 그렇게 쪽잠을 자면서 일주일은 각종 검사장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내과와 신경외과 등을 쫓아다니며 하루를 길게 보냈다.

그러는 사이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좀처럼 보기 힘든 역대 최고급 수해였다. 창밖을 바라보면 쏟아지는 비밖에 안 보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상태도 좋아지지 않았다. 또 아버지의 환자 냄새도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나는 그렇다고 해도 5인실은 같이 공동으로 쓰는 곳이었다. 타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예민함이 극도로 높아진 나는 짜증이 몰려왔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에 나에게 가족이 없었다면?’


아니 ‘나에게도 형제가 있었다면?’

형제가 없는 나는 친구들과 타인과의 공감하기 힘든 형제애가 궁금했다. 그리고 내가 상담하는 민원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주 가족이 없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어떻게 사람이 혼자는 살긴 해도 혼자서 태어나고 자랄 수 있겠는가. 태어나면 부모가 있고, 함께 자란 형제가 생기고, 친구가 생기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에게 가족이라고는 부모님밖에 없는데, 그러한 가족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병실에 있을 때나 혼자 술을 마실 때. 상상하긴 하지만, 난 지금 사는 고향에 살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에도 풍요 속의 고독을 즐기는 내가 내 이름을 열 명은 아는 동네에 사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다지 착하지 않은 나는 좀 더 나태하게 살았을 것이다. 공무원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간간이 돈벌이를 위해서 일을 하다가 책을 보고 익숙한 주변을 정처 없이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책임이라는 것이 없으니, 나의 죽음보다는 달콤한 무언가를 위해서 살았을 것이다. 힘든 순간 나를 위해서 참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무언가 꼭 지켜야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힘든 일을 맞지도 않는 일을 하는 것 아닐까?

내가 고향에 내려온 것도 부모님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휴직을 하면서 내 몸보다도 병간호를 위해서 밤잠을 설치며, 간이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부모님 때문이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나는 말했다.

“저는 두 분 안 계시면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날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두 분이 안 계시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갈까? 휴직의 이유는 물론 복합적인 상황이 있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이유는 부모님이었다. 내가 삶에서 버틸 수 있는 이유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도 부모님이었으니까.

그리고 설령 이것이 거짓된 안도감이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무렵에. 비가 그쳤다. 비가 그쳤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동기들이 소식을 전하기로 물에 잠겼던 집과 농경지 등을 복구하기 위해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나도 그러했다. 아버지 상태가 진정이 돼가면서도 병간호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수해처럼 왔던 병간호는 기약 없이 날 지치게 했지만, 비가 그쳐도 복구를 해야 하듯이 나 또한 회복을 해야 했다. 그렇게 이 비가 그치면 나도 좀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