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 앞바다를 바라보며
사극 덕후인 나는 드라마 <태조 왕건> 몇 번을 정주행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유독 초반에 기대했던 장면은 궁예가 명주(지금의 강릉)를 얻는 과정이다. 그 당시에 산맥을 넘어서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큰일이었다. 그럼에도 그곳을 넘어서 무혈입성하는 과정은 드라마를 몰입하게 하는 시작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나는 후백제의 견훤이 강릉을 갔다면 어떠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 후삼국을 통일하지 않고서야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통일을 했어도 지도만 보았을 것 같은 먼 거리다. 아마 당시 사람들에게는 해외 같은 느낌 아녔을까.
지금의 내 상황을 비유하면 백제 사람이 저 멀리 강릉을 간 것이다. 경주 근처인 포항을 거쳐서 당시에도 이용하던 해안 길을 따라서 말이다. 물론 두 다리가 아니라 차를 타고 갔지만, 아침에 출발한 나는 밤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꼬막 비빔밥과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경포대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숙소를 잡았다. 사실 먼저 허기진 배를 채우기 바쁘긴 했다. 코로나 때문에 식사다운 끼는 꼬막 비빔밥이 처음이었다. 연거푸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니 깜깜했다.
푸른 바다가 밤이 되니 해변에 설치한 가로등 불빛까지만 검은 파도가 보였다. 그리고 파도 소리만 들렸다. 숙소에서 의자를 두고 달달한 커피 믹스를 마시면서 한동안 검은 바다를 바라봤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을까? 뭔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온 것이긴 했다. 아니면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꼭 들러야 하는 성지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렇게 검은 바다를 보기는 처음이다. 모두가 아는 그러한 푸른 바다를 보기 위해서 달려오지만, 마음처럼 어두운 바다.
보이지 않는 바다 대신 그 소리를 들으면서 습작 노트에 내가 불안한 것들과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을 쭉 적어서 나열해보았다. 그러다가 내가 취업을 하면서 이곳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독기’
취업하기 전에 나는 치열하게 살았다. 사실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했던 것은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미친 듯이 살아야 할 필요가 없을 직업을 위해서 난 더욱 열심히 살았다. 그래도 습관이란 것이 몸에 배 있어서 성실하게는 보일지는 몰라도, 당시의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한 달 벌어서 그달을 신경 쓰면서도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독하기도 했고, 주변에 냉정하기도 했고, 과감하게 밀어붙여야 했다.
그러다 취업을 하고는 이젠 필요 없을 거라도 다짐하고, 둥글둥글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살아 있는 동안은 그것들이 필요했다. 마치 대학교에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결국 그것이 더 큰 시작을 위한 준비였다는 알면서도 또 당했다.
목표라는 것은 그랬다. 달성하기 전에는 삶의 원동력이지만, 이루고 나면 다른 무언가를 다시 설정하고 매진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해보면 입사 전에도 집안 사정은 비슷했고, 지금보다 더 재정 상황은 안 좋았다. 그렇지만, 취업이라는 목표에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목표가 없어진 지금.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아마도 저 멀리 지리산 곰이 강릉 앞바다까지 온 것도 그것을 고민하기 위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과 잠을 반복하다가 해 가 뜨기 시작했다. 동해의 일출. 붉은 태양이 떠오르자. 나도 조금은 내가 살아야 할 방법이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