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에는 기차역이 있고, 추억도 있다

해돋이의 추억

by 이춘노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되고, 덩달아서 정동진역이 인기를 끌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바다가 보이는 기차역은 생소함을 떠나서 당장이라도 가고 싶다는 충동이 생길 정도로 아름다웠다. 물론 고독한 그 분위기가 매력인 정동진역은 그렇게 명소가 된 이후로는 처음 모습과는 다르게 시설물들이 하나둘 생겼다고 한다. 아마도 유명 관광지가 되기 전에는 강릉역을 가기 전에 해돋이가 아름다운 역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에게는 가고 싶었던 장소 중 하나였다.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된 그해에 나는 입대했다. 그것도 월드컵 전야제. 그래서 난 입대 전에 서울을 거쳐서 기차를 타고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정동진을 갔다. 한여름은 아니지만, 봄과 여름의 어느 중간 날씨는 새벽 공기와 바닷바람마저도 상쾌함을 느끼게 했다. 물론 해돋이를 위해서 이른 기차를 타고 왔기에 가로등 이외는 모든 것이 깜깜하기만 했지만, 모두 그것을 보기 위해서 멀리 있는 길을 온 것이다.

운이 좋았다. 비도 없었고, 그 흔한 구름도 없었고, 날씨마저 춥지 않았다. 붉은 태양이 떠오르기만 기다리던 몇십 분 후에 드디어 저 멀리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다. 정말 매일 뜨고 지는 해를 보기 위해서 나 또한 지리산에서 왔다.

사진을 찍고, 소리를 지르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주변에 보였다. 아마 그중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원도 있었을 것이고, 가족을 걱정하고, 나라를 걱정하고, 어쩌면 대한민국 축구가 4강에 진출하기를 기도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도를 했다.


입대를 앞둔 20살 청년의 두려움은 아마 기도로도 감출 수 없겠지만, 정말 건강히 내가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했다. 그리고 그렇게 잘 다녀오게 되면 정동진역에서 다시금 오겠다고 다짐했다.


코로나 19가 터진 2020년. 이제는 여름이라기보다는 가을 어느 날, 나는 강릉을 거쳐서 내려가는 길에 정동진역에 왔다. 기차도 아니고 내 차로 온 정동진역은 그야말로 관광지였다. 한 끼 식사를 충분히 사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식당과 그 식당이 부담스러워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기 위한 편의점도 있었다. 그리고 언제 생겼는지? 주차장도 넓게 자리했다.

승강장은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서 강릉으로 출발하는 기차를 보고 바다를 보다 나왔다. 사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몇 번 강릉을 갔었고, 정동진역도 왔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입대 전 약속을 지키며, 나는 수 없이 많은 다짐을 했다. 생각해보니 정동진역은 그대로였다. 그냥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더니 마음대로 추억을 버리고 왔다. 마치 태양이 뜨는 것은 매일 반복적인데도, 굳이 해돋이를 보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난 정동진이 추억을 한가득 버리고 왔다. 휴직하고 이제는 인생을 어찌 살아야 할지 고민이란 그것마저 그곳에 툭 놓고 왔다. 그리고는 모두 그랬던 것처럼 고생해서 온 것 치고는 미련 없이 떠났다. 정동진역은 굳이 맡고 싶지 않던 추억이란 쓰레기를 버리고 온 나는 다른 추억을 위해서 다시금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