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일까? 미안함이었을까?
경북 봉화군이라는 곳이 있다. 내가 근무했던 지리산과 조금은 비슷한 느낌의 산이 많은 지역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유명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20대 이전까지 나는 지명조차도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전라도 지리산이 있는 곳과 경북의 어느 군을 다 알 수는 없으니까. 그런 내가 정동진역을 지나서 찾은 곳이 바로 봉화이다. 강릉까지 올라갔던 길이 동해를 바라보면서 온 여행이라면, 지금부터의 길은 그것과는 정반대의 여정이다. 아무리 지리산 출근으로 산길 도로에 익숙한 나라고 해도, 태백산맥은 무리다. 원래는 울진에서 빠져서 가려고 했던 길인데, 강릉을 가는 기찻길 노선을 타고 가고 있었다. 태백시를 거치면서 느꼈다.
나의 엑센트는 심장이 터질지도 모르겠구나.
다행히 나의 애마는 심장이 터지지 않았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도로를 타고 가면서 좀 멈추고 돌아가길 했다는 점 빼고는 목적지까지는 그런대로 잘 도착했다. 내비게이션으로 잡은 목적지는 분천역이다. 사실 봉화군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산 중의 산골이다.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온 이유는 스스로 약속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 사귀던 여자 친구의 시골집이 분천이다. 그리고 그 약속 중 하나는 “나중에 꼭 찾아오겠다.”라고 했던 말 때문이다. 당시에 나를 참 많이 이뻐해 주셨던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나 돌아가신 이후에도 분천에 계시기 때문이었다. 참 오래전 이야기다. 젊은 시절의 여자 친구였고, 미안했고, 또 고맙기도 했던 사람이라는 점을 떠나서 갑작스럽게 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마흔이 되고 보니 보고 싶었다.
전라도 남자였고, 외아들이었고, 아직 대학이나 다니는 나를 참 챙겨주셨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버스를 두 번을 갈아타고서 장례식장을 갔다. 그리고 추운 겨울, 땅이 꽁꽁 얼었던 장지도 기억한다. 그렇게 언젠가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너무 늦어 버렸다.
그런데 너무 늦어버려서 마을도 길도 너무 달라졌다. 무덤이 어딘지도 알 수 없어서 그 근처에서 차를 세워두고 한참을 생각했다. 나의 20대는 너무나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며 살았구나. 공부하겠다고, 부모님에게 모질게 이야기하고 서울을 올라갔던 때도 그랬고, 시험이 계속 낙방하면서도 무리하게 도전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물론 과거는 돌아오지 않기에 미련은 없다. 법원직 시험에 낙방해서 못 갔다고 누구를 탓하겠는가? 결국은 내가 시험을 못 본 것인데. 또 상처를 준 사람들은 이미 대부분 떠나고 없고, 부양할 가족만 남았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도 그럭저럭 정을 붙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미련일까? 미안함일까?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기억도 남는다고 한다. 나 또한 그런 것이 아닐지? 굳이 봉화를 들렀다 가려고 했던 것도 내 마음의 미안함을 털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생각하다가 영주로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지나다 보이는 봉화역을 지나치면서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한 번 더 보고 돌아보고 영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