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여행의 시작
수해가 터지고 두어 달이 지난 10월 어느 날. 아버지 병간호를 잘 미치고, 드디어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도 9월 말까지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 퇴원과 맞물리는 시점에서 어머니 대학병원 검사와 진료가 있었고, 묵혔던 매복 사랑니까지 뽑았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후다닥 이루어졌다. 그건 아마도 여름이 아니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마음이 조급해졌기 때문이다. 복직을 생각하더라도 10월에는 뭔가 정리가 필요했다. 그 장소는 이미 휴직을 시작하면서 정해뒀다.
‘강릉’
안 가봐도 들어보고, 가보면 다시 가고 싶은 국도가 있다. 바로 동해가 보이는 7번 국도이다. 내가 사는 내륙에서 강릉을 가기 위한 가장 편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을 가는 것이다. 거리상으로는 삥 돌아서 가는 것 같아도 이동 수단은 그것이 제일 다양하다. 그래도 차가 있다면 시도하고 싶은 것이 바로 7번 국도를 타고 강릉을 가는 것이었다.
2020년 코로나 시국에 7번 국도의 맛집 탐방은 못 하더라도 바다가 보이는 그 국도를 그냥 달리고 싶었다. 그렇게 짧은 일정에 짐을 싸고, 날씨가 좋은 10월 어느 평일에 집을 나섰다.
나는 9시를 시작으로 일단 포항을 향해 달렸다. 차량 스피커에서는 2001년부터 유행했던 노래들이 순서대로 흐르고 있었다. 휴게소는 최대한 지나치고, 점심은 차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포항을 향했다. 딱히 포항은 7번 국도의 시작을 위해서 달리지만, 그래도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영일대 해수욕장을 들렀다. 그곳에서 전망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후에 일정을 정리했다. 앱으로 경포대 해수욕장 숙소도 예약하고, 도착하면 먹을 맛집 검색했다. 그리고 그것을 포장해서 먹을 상상하며, 바다를 보았다. 날씨만큼 바다는 잔잔했고, 파랗고, 고요했다.
차 타고 드라이브하기 좋은 날. 나는 강릉을 향해 달렸다.
낯선 지명과 길은 문제 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가는 길은 처음 가는 곳이었다. 설령 누군가의 차를 타고 어릴 적에 갔었다고 하더라도 내 차로 운전하며 달리는 것은 모든 것이 처음인 오늘은 오로지 나만 생각했다.
한참이 지나고, 영덕이 보이면서 바다도 옆 창문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도로와 바다가 공존하는 이곳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냥 바다도 아닌 그 푸른 동해를 옆에 두고 달리는 기분이란 운전대를 잡은 손끝에 짜릿함을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바다를 보고 어떻게 그냥 두고 갈 수 없어서 해수욕장에서 멈춰서 바다를 바라보는 멍 때리기를 즐겼다. 바닷가 사람들이 만약 내가 사는 곳에 와서 지리산을 봤다면 이런 느낌일까? 신기한 기분을 넘어서는 벅찬 감격으로 그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눈과 마음으로 담았다.
바다를 향해 달릴 순 없어도, 바다를 바라보며 그 옆을 달리는 것만으로 피곤한 줄 모르게 운전을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을 달리다 보니 어둠이 왔다. 그리고 강릉에 도착했다. 내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그곳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