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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Dec 29. 2023

마흔 넘은 노총각이 살아가는 이유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26일 짝수 날이다. 차량 번호도 6으로 끝나는 짝수이고, 나의 나이 앞자리도 짝수라서 기분 좋을 것 같은 하루였다. 모든 것이 맞춰진 듯한 하루에 불쑥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는 짝수 날의 좋은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2019년 어머니의 간암 진단과 수술 이후에 모처럼 불려 가는 2024년의 시작이 예고된 시점에서 올해의 끝과 시작은 많이 어긋나 버린 것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악화가 된 것이 있을 것이다. 재발이거나 혹은 전이거나 아니면 다른 병명으로 새롭게 차트에 기록들이 늘어날 것을 알기에 잠시 한숨을 쉴 법도 하지만, 난 앞선 민원과 밀린 일 때문에 한 호흡정도 늦춘 숨으로 불안을 삼켰다.


  이럴 때는 꽤나 침착해지며, 냉정해진다. 1월 15일이라는 진료 예약에 이후를 생각해 본다. 숙달된 조교처럼 그런 점에서는 질병과 병원이 익숙한 나였다. 달력에 일정을 표시하곤 팀원들에게 살짝 나의 상황을 알렸다. 피치 못할 상황이라면 한 주는 나오지 못할 수 있었다. 2019년에도 그랬다. 지리산에서 전주까지 오가는 거리에서 오수휴게소는 내 잠자리 장소기도 했으니까. 뭐 이번엔 그 정돈 아닐 거라는 생각에 바쁠 1월에 일정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본다.


  2014년에 고향에 왔을 때는 20대의 고생은 이젠 안녕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돈이 없어서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겠다는 안심이 있었다. 물론 나의 30대는 여러 가지로 살기 버거웠다. 설령 직장이 있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삶의 고통에 다른 고통으로 견디는 일종의 돌려 막기 삶이었다.

  사는 것이 포기보다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는 쇼펜하우어처럼 죽음의 예찬을 들먹이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랬다. 솔직히 사는 맛이 안 났다. 고통의 돌려 막기에 슬슬 지치고 힘들어서 인생을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휴직도 했고,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보았다. 또 다시금 힘든 일이 생기면, 과감히 포기하리라. 그리 다짐했다.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말은 어느 순간에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기 시작하면서 난 마흔을 넘겼다. 그 틈에 복직도 했고, 오지 않을 것 같던 2023년을 보내고 2024년을 맞이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짝수의 해가 오지만, 첫 시련이 좀 버겁다. 아주 오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싶었다. 아직 나의 시련의 터널을 나오지 않을 걸까? 운전을 하면서 김동률의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늦은 한숨이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같이 나와버렸다. 아마도 마흔이 되면서 주책없이 눈이 고장 난 모양이다.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마음이 완전히 식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퇴근길에 마음이 많이 상했을 어머니를 독한 말로 위로했다. 아직 1월 15일도 아니고, 건강하게 다음을 준비해 주시라고 말이다. 평소에 잔병에 병원 입원을 하시던 아버지에게도 건강 관리하면서 내년을 또 혹시 모를 일에 어머니를 챙겨주시라 단단히 말했다. 어쩜 그건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겠지.


  고백한다. 나의 사랑은 그간 너무 삭막했다. 너무 이기적이었고, 또 냉정했다. 당장의 내 현실에 힘들다는 말로 다른 사람의 아픔은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나의 사람은 어리석었다. 또 미안함이 가득한 20대와 30대였다. 내가 좋아했던 짝수의 20대는 그리고 쉼표였을 30대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주변까지 상처를 줘버린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부모님이었다. 삶이 아무리 싫었어도 그 두 분이 살아계신 동안은 이곳에 남아 있으리라 다짐했던 순간.


  단호하게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했던 짝수의 어느 날에 과거를 떠올렸다. 내가 상처를 줬던 누군가의 어머니는 나에게 나를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셨다. 아마 나의 서른의 마지막 눈물샘을 다 쏟아낸 날이 짝수 날은 아니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짝수의 어느 해. 그리고 어느 날에 마흔이 넘은 나는 다시금 살아가는 이유는 생각해 본다. 조금은 차갑지만, 역시나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힘들지만 당신이 있기 때문이란 걸..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다. 삶의 이유를 그리고 행복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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