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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Dec 27. 2023

나는 공중전화로 사랑을 배웠다

핸드폰이 없는 그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철없던 시절에 누군가를 애가 타는 마음으로 좋아하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 사랑의 매개는 편지와 공중전화기다. 한 번 보내면, 다시 답장이 오기 보름은 걸릴 손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편지지를 구하려고, 문구점을 갔다. 악필이지만 조심스럽게 펜을 눌러쓰던 문학 소년의 마음에 그 시간이 너무 기다리기 힘들 때. 마을 입구에나 있을 공중전화기로 달려갔다.


  뚝뚝 떨어지는 동전 소리에서 다급함과 아쉬움이 목소리에서 묻어 나는 순간. 오직 공중전화기에서만 불빛이 환하게 비추던 것은, 온 세상의 사랑에 중심에 내가 있기 때문이라는 착각을 했던 그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것 같다. 나도 그 시절에는 누군가를 참 절절하게 사랑했었다.


  군대에서 줄지어 있는 병사들이 손에는 전화카드가 있었다. 마치 탄장처럼 갈아 끼워가면서 사랑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20대의 풋풋한 사랑은 어딜 갔을까? 동전보다는 차분한 소리였지만, 그 전화카드로 사랑도 하고 이별도 했고, 웃기도 울기도 했던 시절.

  추억해 보면 밤에 하는 전화가 참 감미로웠다. 모기가 공중전화기의 불빛과 춤추면서 고요한 주변에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에 항상 누군가 서있었던 그 공중전화기는 이젠 어딜 가도 찾아보기 힘들다.


  마흔이 넘은 지금.

  기차를 타기 위해서 서성이는 내가 공중전화기를 마주하면서 뭔가 세련된 모습이라 사진을 찍었지만, 옅은 연두색의 공중전화 부스가 떠오른다. 솔직히 나의 사랑은 그렇게 세련된 색이 아니었다. 어딘가 어색하고, 어리숙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랬기에 더 준비가 안된 풋풋한 감정이 오롯이 목소리로 전달되던 때가 있었다.


  다시금 공중전화기를 들고 싶어 진다.


  가끔은 거리를 나서서 없어진 공중전화를 찾는 것처럼.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야. 그런 절절한 내 목소리를 외칠 수 있을지.


  사랑한다는 말. 다시금 할 수 있을까?


  혹시나 다음에 공중전화기를 마주하면, 전화를 해봐야겠다. 내가 지금 떠오르는 사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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