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사진을 즐겨 찍던 시기가 있었다. 면사무소에 고양이가 많았고, 그런 모습을 사진에 담아서 브런치에도 글을 오렸던 시기에는 몰랐다. 고양이의 성장 모습도 하나의 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다만 사진에 전문성은 없고 매번 같은 모습이었기에 어느 순간 길에서 우연한 만남에 고양이를 찍기는 해도, 꾸준한 일상은 더 이상 올리기 어려웠다.
흔히 '나만 없는 고양이'가 나에게도 있다.
모처럼 수급자 가구 방문을 하면서 어르신이 고양이 밥을 주고 계셨다. 익숙한 모습의 새끼 고양이들이 낯선 인간의 등장에 경계하다가 이내 자유롭게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다. 시골에서는 자주 만나는 길 위의 고양이들이다. 이 녀석들처럼 집을 거점으로 사는 아이들은 행복한 편이다. 인심 좋은 어르신의 보살핌에 거친 밥이 아니라 사료나 뜨끈한 밥도 먹고살고 있으나 말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경계도 심하지 않다. 1미터의 거리만 지킨다면, 자리를 지킨다.
나도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히는 키운다기보다는 같이 동거한다는 개념이었다. 길에서 자라던 녀석이 아이를 낳아서 졸졸 따라다니고, 그 고양이가 커서 다시 새끼를 낳는 것을 지켜봤다. 그런 점에서 우리 집은 너무 서식하기 좋은 곳이었다. 밥도 주고, 물도 있고, 은신처로 삼을 곳곳의 장소가 마련된 시골집이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당시에 쭉 그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은 들지만, 지금에 와서 좋아하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것은 '나만 없는 고양이' 상태가 편하기 때문 아닐까.
책임이 무섭다 생각한다.
고양이도 사람도 지켜볼 때 사랑스럽기에 다가가기 어려운 것.
나만 없는 고양이를 따질 게 아니라. 사람도 없다. 이젠 좀 불편함을 감수해도 되지 않을지. 고양이 책을 읽다. 잠시 나를 돌아봤다. 사랑하려면 다가가야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