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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Feb 21. 2022

돌이킬 수 없는 걸음

나는 뒤를 볼 수 없었다

  영화 <장화·홍련>에서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이라는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고풍스럽지만, 마음을 울리는 리듬이 마음 한 곳을 건들었던 것일지. 한동안 멍하니 자리를 지켰다. 우울할 때는 밝은 것을 찾으라 하던데, 정신을 차려보니 불빛에 모여드는 불나방처럼 어두운 선율에 나를 맡기고 있었다.      

  요즘 나는 돌아갈 곳을 잠시 접어 두었다.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나의 삶을 누구를 탓하기 싫었지만, 세상은 가끔 나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기도 한다. 물론 나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며, 어찌 되었건 내가 선택한 일들이다. 그렇기에 후회란 것은 장수생을 자처하며 치렀던 시험을 포기했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설령 후회되었다고 하더라도 외면하더라도 상관없었다. 평소에 나는 사소한 개인의 돈 문제나 다른 것은 대범할 정도로 포기가 빨랐다. 그 정도로 자신에게는 단순했다. 

  그렇지만, 내가 잘못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아침에도 물을 마시면서도 잠시 눈을 감는 와중에도 게다가 쪽잠을 자는 와중에도 꿈에서 나왔다. 조여 오는 심장과 주체하질 못한 헛구역질은 식사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비난을 퍼부었던 민원인의 곱지 않은 말투와 비난이 먹은 것을 다 쏟아 내게 했다. 그렇게 사람이 일주일간 다섯 끼만 먹어도 살 수 있다는 점과 기록적인 감량이 된다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터질 것 같은 공간의 갑갑함은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더니 책임감이라는 것도 염치라는 것도 없게 만들었다.    

  

  어느 날 새벽, 내가 유일하게 했던 후회였던 장수생 시절을 떠올렸다. 내 평생 미친 듯이 공부하며 행복하게 공부했던 시절. 아마 모든 것을 걸었던 그 시험에 합격했다면 난 과연 지금의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응급실 침대에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을 맞으며 생각해봤다. 치료를 위한다고 하지만, 고마운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못 하고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비워진 자리에는 또 다른 걱정이 찾아왔다.

  2019년에 간암 수술을 하신 어머니의 검사 결과가 좋지 못하시다. 불과 몇 주 전에 아버지가 병원 입원을 했다. 퇴원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웃자고 하던 말이었겠지만, 내 전생의 덕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고, 나를 증오하던 누군가의 저주가 제대로 통했다고 생각도 들었다.


  한데, 의외로 나는 담담했다. 모든 것이 두 번째였고, 익숙해서 그랬을지. 마음과 몸이 아픈 사람치고는 냉정한 말을 툭툭 잘도 던졌다. 마치 올해만 살다가 죽을 것처럼 너무 덤덤하다. 이것이 이성적일까? 아니면 나를 포기한 것일까?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지.

     

  걸음은 돌이킬 수 없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이러는 내가 참으로 짠하면서도 미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볼 수 없음에도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걷는 나는 제대로 걷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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