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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Mar 24. 2022

마흔이 된 아들이 어머니 손을 잡다

언제 이렇게 늙어 버리셨는지

  “병원은 기다리는 게 일이네….”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환자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들이다. 사실 속으로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귀로 들었던 것만 오늘만 세 번은 넘는 것 같다. 비가 그치고 이제 봄바람이 불어오는 월요일에 대학병원 진료 대기실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환자 중에는 우리 어머니도 계신다. 


   오늘은 조금 중요한 날이다. 2019년 8월에 간암 판정을 받고, 꾸준하게 병원 검사를 받으셨던 어머니가 보호자 동행이란 의사 말을 듣고 한 달 후에 같아 올라온 것이니까. 지난달에는 내가 몸도 마음도 정신이 없어 따라가지 못했지만, 동행할 보호자라고 해봐야 나뿐이니까. 물론 아버지도 계시지만, 그분도 건강이 안 좋으시니, 20대 후반부터 나는 부모님 보호자였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모처럼 모자지간에 대화를 나눴다. 나도 그렇지만 어머니도 혹시나 간암이 재발하였을지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았다. 솔직히 우리 집 식구들은 한 달 동안 나름의 걱정을 품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마 병원을 가면서 나눴던 대화들은 평범하긴 하지만, 불안을 잊고자 하는 수다였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에게 어머니는 각별했다. 내가 어릴 때는 그 누구보다 무서웠고, 군대를 제대하고부터는 실질적으로 생계를 책임지면서 아들의 꿈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셨다. 드문드문 아버지가 병원 신세를 질 때도 병간호하시던 어머니가 계셨기에 집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아마도 나는 타인에게 부끄러움도 잊고 가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주셨던 어머니에게 크게 의지하고 또 무심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또래와 비교하면 부모님 병간호에 익숙하다. 그것도 20대부터 시작하는 것이니까. 정신력이 부족하다는 세간의 평가 속에서도 그 시간을 버틴 것이 오히려 기적이었다. 지금 내가 일을 하는 사회복지도 부모님 때문에 알게 된 것이다. 남들처럼 막연하게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했던 것도 아녔다. 확실히 하고 싶은 직렬에 20대를 다 투자했던 사람이 아무 인연 없던 사회복지 쪽으로 진로를 정한 것은 9할이 부모님 영향이다.

  우연인지. 아니면 악연인지 모르는 이 시작을 어떤 지인은 인연이라며 좋게 포장해주고 있지만, 지금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복지만 생각하면 막연하게 손이 떨린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들었던 폭언이나 협박이나 비난은 8년을 들었어도 좀처럼 적응이 안 된다. 

  물론 알고는 있다. 누군가에게 풀어내야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날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 실수라도 하면 지적하고 싶은 마음 정도는 말이다. 나도 그 상황에서는 억울하고 분했으니까. 너무 막막했으니까. 돈이 없어서 하루하루 아버지의 병세와 함께 중환자실 비용을 걱정했던 마음을 20대부터 경험했으니까. 성인이라고 해봐야 취업 준비를 하는 28살짜리가 뭔가 하지도 못한다는 걸. 


그렇게 쌓인 마음에 빚. 부모님에 대한 것도 사회에 진 부채를 풀려고 일했는데, 이 모양이다. 


  병원은 기다리는 곳이라고 하지만, 초조하다. 어머니 표현대로라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그렇지만, 진료실 앞에 쭉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다. 혹시나 이번에 재발하면 어머니는 수술은 싫다고 하셨다. 3년 전에 수술실로 가는 어머니에게 꼭 잡은 손을 놓으면서 결혼을 하지 못했던 것이 처음으로 후회했다. 현실적으로 결혼은 힘들기에 내린 내 독단이지만, 마음이 쓰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늘도 그랬다. 본인이 죽고 나면 쓸쓸하게 남을 남편을 걱정하는 말을 듣자면, 나도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된다.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면서 우리 앞에 담당 교수를 만나고 나오는 환자와 보호자를 지켜보면 과거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당황스러움에 진료실을 그냥 나가는 환자와 얼굴이 상기되어서 말로는 다행이라고 하지만,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눈가. 아마도 저 집은 수술해야 하는 상황을 짐작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어찌 보면 슬픔과 현실은 딱히 별개의 것은 아니다. 지금의 저 가족처럼.    


  다행히 어머니는 재발이 되지 않았다. 다만, 그럴지 모르는 검사 결과에 조만간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 말을 보호자인 나는 따로 들었다. 다시금 다음 검사를 위한 예약을 위해서 상담실에서 기다리는 중에 긴장이 풀리신 어머니는 이모나 고모한테 전화하신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이다. 아마도 안도의 소식을 전해야 마음이 놓이시는 것 같다. 

  병원을 나와 약국까지 다리에 힘이 풀리신 어머니 손을 잡고 걸었다. 몇 년 만에 어머니 손을 잡고 걷는지. 기억에 초등학교 입학식에 엄마 손을 잡고 갔던 기억이 나긴 하는데, 1학년 6반 선생님께 아들을 잘 부탁한다면서 손을 잡던 때가 떠올랐다. 그런데 언제 이렇게 늙어 버리셨는지? 손이 너무 거칠고 작게 느껴졌다. 하긴 나도 이제 마흔이 되어버렸으니까. 당연한 건지도…. 언제까지 내 옆에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걱정을 덜고 나도 좀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하여튼 병원은 참으로 사람을 지치게 하고, 상념에 빠지게 하는 독한 곳임은 분명하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지만, 더 오래 어머니 손을 잡으려면 다시 와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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