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춘노 Apr 05. 2022

200m 인도에서 만난 동물들

자유로운 멍멍이가 부럽게 느껴질 때

<순대국밥집 백곰이>

  ‘엇! 하얀 멍멍이….’

  길을 걷다 보면 동물들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요즘은 밤이 아니라 낮에도 가끔 외출할 수 있어서 녀석들의 표정이 자세히 보인다. 내가 지금 빤히 쳐다보는 멍멍이는 우리 지역에 유명한 순댓국밥집에서 키우는 백구다. 어쩐지 뚱해 보이는 표정이 나를 닮았다고 하는데, 역시나 곰 같은 녀석이다. 녀석이 하는 일이라고는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주인이 주는 밥을 열심히 먹거나, 잠을 자는 정도다. 귀엽긴 하지만 어쩐지 활력이 없어서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묶여있어서 자유는 없어도 먹을 복은 많은 것 같이 토실토실하다. 난 그냥 혼자 백곰이라고 부르면 아는 척하는데, 한 번도 아는 척을 안 해준다.

<백구와 반달이>

  이런 짧은 외출 중에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같은 도로에 하얀 백구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누가 봐도 딱 그런 상황이다.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는데, 애들이 봤으면 분명 놀라서 몰려들었을 것이다.

  가만히 숨을 쉬고 있는지 하얀 배를 유심히 지켜봤다. 자세히 보니 살짝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러다 약간 그늘에 가려서 몰랐던 한 생명체를 눈치챘다. 꺼먼 색이라서 몰랐는데, 하얀 반달 모양 줄이 있는 녀석도 근처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순간 맥이 빠지면서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도 짐승답지 않게 무방비 상태로 세상모르게 잠을 자고 있었다.

  이 허당 짐승들은 요즘 날이 풀리고 방을 나와서 낮에 산책을 조금씩 하면서 알게 된 백구와 반달이다. 앞서 만난 백곰이 하고는 다르게 두 녀석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어디 상식 없는 집에서 개를 풀어놓았느냐고 신고를 해도 되겠지만, 가만 보니 초등학교 애들한테도 제법 인기가 있다. 아마도 애교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애교도 무척 여유롭다.


  작은 소도시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개는 종종 목격되고는 한다. 내가 산책을 위해서 다니는 이 길도 사실은 제법 큰 도로의 인도이다. 다만 주택가와 인도 사이에 나무와 잔디가 있어서 견주들이 산책 코스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그래서 큰 개부터 아주 작은 소형 개까지 다양하게 마주치기는 하는데, 위화감 없이 돌아다니는 녀석들은 뭔가 느낌이 다르다.

  뭐랄까?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나 개들치고는 너무 편안해 보였다. 200m도 안 되는 이 길에서만 세 마리의 개를 만났고, 길고양이를 만났고, 주인이 있는 반려견들도 봤다. 보통의 경우에는 백곰처럼 아무 감정 없는 표정이거나 주차장 고양이처럼 잔뜩 주눅 들어 있는 녀석들뿐인데, 저 둘은 자유로운데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면사무소 고양이들이 생각났다. 녀석들도 길고양이답지 않게 참 편안해 보였는데, 그것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 아닐지.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둘이기에 저런 모습일까?
<주차장 길냥이>

 사실 나는 혼자가 좋다. 더 정확히 말하면 200m를 수없이 산책하면서도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서 혼자인 지금 간섭을 두려워하며 숨어 지내듯 살고 있다. 그랬기에 지금 낮에도 저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솔직히 외모를 닮은 녀석답게 난 백곰이 처럼 주변을 관찰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간섭도 싫고, 책임지는 것도 싫어서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키우지는 않았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은 꼬박꼬박 챙겨주지만,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음 주는 것은 극도로 경계하는 것은 또 녀석들과 닮았다.

  그래서인지 백구와 반달이가 참 신기하다. 저렇게 자유로운데, 사람이 다니는 길에서도 편안하게 낮잠을 즐길 수 있는지. 말이 통하면 한번 묻고 싶지만, 역시나 꼬리만 흔들 뿐 답은 얻지 못했다. 온전히 봄 햇살을 느낄 수 있는 두 녀석이 부러워서 오늘은 좀 더 걸어봤다.

  좀 더 멀리 1km, 5km, 10km. 짧은 길을 벗어나 좀 더 걷고 많은 것들을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어쩐지 오늘은 백곰이 목줄을 풀어 주고 싶다. 아마도 만족하며 살고 있으니 움직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같이 꽃비 산책을 하면 좋겠다. 물론 상상이지만 여유로운 마음이 생기는 하루다.      

<면사무소 고양이들>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이 된 아들이 어머니 손을 잡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