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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Apr 28. 2022

나의 춘향이

올해도 시작되는 춘향제

  키가 지금의 반절쯤 되었을 시절. 서울 사시는 고모집에 가면 자주 교회를 따라가곤 했다. 그리고 똘망똘망한 아이들은 교회에 등장한 새로운 누군가에게는 관심을 보였다.      

  “어디서 왔어?”하고 물으면 난 당연하게 말했다.

  “남원!”

  하지만 아이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되물었다.

  “남원??”

  하긴 내가 서울을 알아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지명을 알기는 어렵겠지. 그래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유명한 지명도 아니다 보니 부연설명을 붙여야 한다는 것은 어린 나도 눈치껏 알긴 했다.


  “춘향이! 춘향이랑 이몽룡 있는 곳.”


  그러면 그제야. 텔레비전에서 봤다면서 이것저것 물으면서 친근하게 대해줬다. 어린이가 설명하기 힘든 고향 위치까지 ‘춘향이’ 한마디면 어느 정도 해결해주는 그녀는 정말 대단했다. 그건 내가 나이가 제법 먹고서도 같았고, 마흔이 되어서도 변함없다. 그렇게 나의 춘향이는 누군가에게 내가 사는 곳을 설명하기 편하게 하는 지역 스타였다.     


  생각해보면 춘향이 덕분에 즐거웠던 시절도 있었다. 바로 춘향제이다. 과거에는 어떠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해의 춘향이를 뽑고, 모두가 즐기는 축제. 어릴 땐 항상 그 5월의 어느 기간을 기다렸다. 전야제에는 중·고등학교 다니던 누나들이 한복을 입고 청사초롱 등불을 들고 행진을 했고, 밤에는 하늘에 화려한 불꽃도 쏘았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역시나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춘향이, 이몽룡, 향단이, 방자로 꾸미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또 야시장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장사꾼들로 못 보던 먹을거리도 많았다. 가끔은 할머니 손을 잡고 서커스 구경도 했던, 키 작은 시절의 춘향제는 모든 것이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그렇게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방자 옷을 입고 행렬을 참가도 했다. 사실 나는 남자 중·등학교를 나왔기에 여장을 하지 않는 방자가 가장 무난해서 기분 좋게 거리를 돌았던 추억이 있다. 지나는 거리에는 동네 어르신이나 친구들로 모두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또 그해에 뽑힌 춘향이가 누군지 궁금해서 사진도 챙겨보긴 했다. 어느 지역에서나 뽑는 특산물 아가씨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그야말로 춘향이다. 내가 사는 고향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전국적인 미인으로 다시금 뽑히는 것이다. 덕분에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고, 야시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변변한 놀이공원도 갈 수 없었던 지방 소도시 아이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가 즐거웠던 기억 같다. 대학교, 군대, 취업 준비를 하면서 축제는 조금 싫증이 났다. 춘향제가 무슨 뜻이며, 왜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의미가 존재하는지 찾아보면 검색하기도 쉽다. 그만큼 오래된 지역 축제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축제가 흥미가 없었던 이유는 내가 사람을 귀찮아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특히나 요즘에는 더욱 그러하다.


  축제는 즐거운가? 아니면 즐겁지 않은가? 

  결론부터 말하면 어른이 되고서 축제는 즐겁지 않았다. 특히나 코로나 19로 집에서만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매년 해오던 축제가 생략되어도 삶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새해 달력에는 국경일처럼 때가 오면 해오던 모든 것들이 가위로 자르듯 편집되었다. 즐거움보다 자신의 생명이 중요한 상황에서는 오락거리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녔다. 그래도 사람들은 2020년에 그러한 편집이 혼란스러웠고, 2021년에는 나름의 적응을 하면서 지냈지만, 올해는 조금씩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잃었던 과거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아마 필사적으로 밖으로 나오려고 할 것이다. 아직은 조마조마한 코로나 시국이지만, 언제까지 방구석에서 넷플릭스만 보고 있을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테니까.


  그것이 가능할 법한 나도, 집에 있다가 무심코 달력을 보니 곧 5월이다. 공교롭게도 나 또한 일단 밖을 나서야 한다. 아마도 무척 껄끄럽기도 하거니와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도 정말 나가야 한다. 사람마다 나가야 하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러한 외출은 정말 사양하고 싶다. 5월이라는 달력을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간절하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원에서 제일 유명한 그녀가 돌아온단다. 5월 4일부터는 남원에서 가장 유명한 행사인 춘향제가 시작된다. 평생 살면서 ‘이쯤에는 춘향제를 하겠지?’ 예측 가능할 정도로 당연한 행사다. 그렇지만 지난 2년은 그 오랜 전통의 행사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들을 나는 몇 년 사이에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그 여파가 있겠지만, 올해도 그녀는 돌아올 것이다. 

  아까의 질문처럼 축제가 즐겁냐. 즐겁지 않으냐는 사실 중요한 건 아니다. 

  ‘필요하기에 존재한다.’

   내가 즐겁지 않다고 해서 축제가 없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이렇듯 생기게 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번 춘향제를 다시 보게 되었다. 왜 그토록 사람들은 춘향제를 기다렸을까? 모두 각자의 생각은 다르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춘향이가 되고 싶어서, 장사로 돈을 벌고 싶어서, 지역의 발전을 위한 홍보 수단으로써, 매년 하는 행사로 익숙함 때문에, 아니면 정말로 심심풀이 오락거리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모였기에 축제가 된다는 것을 고향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즐기고, 참여하고, 다시금 직장인으로 준비 과정도 참여해 보면서 다르게 느꼈다. 

  특히나 지금의 내 상황과 관련해서는 말이다. 내가 즐겁지 않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찾던지. 아니면 즐거움을 느끼는 누군가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을지. 지나듯 춘향제 홍보 현수막을 보고서 생각에 잠들었다. 길거리마다 펄럭이는 춘향제를 알리는 깃발이 환영 하는 것은 단순히 관광객들일까? 사실 사람들은 핑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사람들 각자의 이유를 모두 충족시킬 장소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에게 감사하며, 올해는 춘향이도 내 주변에 좋은 사람과 좋은 곳을 좀 둘러봐야겠다. 그래도 춘향이로 가려진 은근히 좋은 것들이 많은 내 고향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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