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밖에 나오게 할 수 있는 형님
“뜨끈~한 국밥 듣든~하게 먹고 말지!”
인터넷 국밥 풍자 영상의 찰진 말투를 따라 해 봤다. 물론 성우급 목소리는 안 나오지만, 속으로 ‘큭~’ 웃었다. 좋지 않은 일만 가득한 요즘 오래간만에 속으로 웃었던 오늘 나도 국밥충이 되었다.
보통의 국밥집은 그 지역에서 유명한 곳으로 많이 찾는다. 나이 든 아저씨들이 찾을 법한 골목이나 허름한 간판이 있어야 세월이 묻어난 맛집으로 인정되는 장소. 내가 처음 접한 순대국밥도 군 복무 시절이었다. 그전에는 절대 돈 내고 먹지 않았을 음식이었지만, 그 자극적이고 든든한 맛에 휴가 때마다 부대 근처 식당에서 사 먹던 시절이 아저씨로 입문했던 시작인 것 같다.
떠올려보면 시장통 피순대 집도 가봤다. 그것도 내가 유일하게 선을 본 여성분이 두 번째 만남에서 직접 추천했던 맛집이었다. 공설시장 어느 골목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허름한 식당. 솔직히 소개팅 첫 만남에 먹었던 스파게티보다 피순대국에 소주 한 잔에 말이 더 통했던 것도 편안함 때문일까?
그리고 한동안은 지금 먹었던 순대국밥에 소주 한 병 마시면서 혼자 밥 먹기도 즐겼다. 아무리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익숙해도 고기를 굽거나, 주점에서 혼자 마시는 술은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어쩐지 순대국밥에 소주를 마시는 모습은 마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것도 한동안 하지 못했다. 내가 세상과 소통에 단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대 거절하지 못할 전화가 왔다.
“밥 먹자!”
어제 식사를 하자는 동기 형님과 약속을 잡고도 메뉴는 정하지 못했다. 딱히 뭘 먹을지 못 정한 상황. 한 번씩 메뉴 선택권을 양보했으나, 결국은 국밥이다.
아까 형님을 기다리면서 찰지게 따라 하고픈 멘트도, 그래서 떠오른다. 아재들이 좋아할 만한 뜨끈한 국물에 밥 한 공기 말아서 먹으면 든든한 게 최고인 순대국밥. 마땅한 메뉴가 떠오르지 않으면 왜 고민 없이 국밥집으로 향할까? 그리고 나는 끝내 방에서 나오지 않을 사람이지만, 동기 형님과 국밥을 맛있게 먹었다.
순대국밥을 맛있게 먹어준 동기 형님은 늦은 나이에 함께 입사했다. 어쩌면 사는 게 참 재미없는 사람이었던 나에게는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 그야말로 큰 형님이었다. 생각해보면 동기들과는 경쟁과 다툼만 한다는 관계라고 입사 때부터 선배들은 말했다. 그래도 끈끈하게 묶여있던 우리는 항상 몰려다녔고, 지금도 서로를 챙기고 있다. 그중에서 나라는 존재는 큰 형님이나 다른 동기들이 보기에는 아픈 손가락이 아녔을지.
경쟁보다는 서로를 챙겨주던 특히나 형님과 함께 먹던 저녁 식사 중에는 어쩐지 말이 많아지는 어린 동생이 되고는 했다. 마냥 그만두고 싶어서 뛰쳐나가려는 동생을 걱정하며 밥은 꼭 챙겨 먹이던 우리 형님.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총각이었던 형님도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새치도 많아진 것이 부쩍 늙어 버렸다. 갑자기 말이 많아진 나는 잠시 생각해봤다. 그런 형님 앞에서 삶의 무게를 논하는 것도 어리광이 아닐지.
사람들은 가끔 국밥충이라는 말을 하면서 가성비라는 말을 자주 한다. 양과 맛에 비례해서 참 가격도 좋다는 뜻이지만, 솔직히 나는 이보다 좀 가격이 비싸다고 하더라도 국밥을 먹을 것 같다. 한마디로 국밥이 좋아서 먹는 것이지 싸기 때문에 그것만 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지만, 오늘 동기 형님을 보기 위해서 문밖을 나서면서 인간관계는 가성비로 따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는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확신이 들었다.
나는 형이랑 또 식사해야겠다고 말이다. 혼자가 좋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편안한 사람과는 항상 국밥을 먹을 준비는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무섭지만, 나를 문밖에 나올 수 있게 할 몇 안 되는 존재가 형님이라서 고맙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형님이 좋아하는 카페모카 20000잔은 함께 마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다음 저녁 식사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