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먹는 회에 소주 한 잔
“올라오기만 해. 모둠회에 소주 한잔하자.”
가장 친한 친구도 거의 고향에서만 보았고, 내가 서울을 올라갔던 건 코로나 시국 이후에는 몇 번 없었던 것 같다. 솔직히 서울을 올라갈 일이 거의 없었던 나는 자주 쓰던 코레일 앱 비밀번호도 까먹고 있었다. 그나마 최근이라면 작년에 공모전 시상식에 참석하느라 하루 올라간 적은 있지만, 친구도 나도 민감한 시기라서 방이 있는 한정식집에서 만났다.
그런데 어린이날 갑자기 서울을 올라가게 되었다. 마스크를 야무지게 쓰고는 기차에서 지난겨울을 생각하고 있었다. 작년에 봤던 용산역은 사람들도 없었고, 저녁 9시 전부터는 문을 닫는 곳이 많아서 썰렁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예상하고 갔는데….
사람들로 넘쳐났다. 기차도 용산역 대기 공간도 식당도 하물며 서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린이날이라는 특수한 날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런 분위기가 무척이나 어색했다. 어찌 보면 이러한 모습들이 당연한 것들이지만, 고작 2년 만에 모든 것이 특별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와 친구는 항상 서울 노량진에서 만나서 수산시장에서 유명한 횟집 모둠회를 주문했다. 그것도 두 명이 먹기에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비싼 거로다. 그리고 2층에 있는 초장집에 가서 우선 회가 오기까지 소주 한 잔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다. 별 것 없는 오이나 당근을 좀 먹다가 회가 오면 본격적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을 마셨다. 물론 이야기의 주제는 퍽퍽한 삶에 대한 넋두리다.
물론 매운탕도 나오는데, 우리만의 원칙이 있었다. 꼭 라면사리는 신라면이 나오는 곳으로 갔다. 이미 각종 특수 부위로 회까지 먹은 마당에 매운탕의 뼈에 붙은 고기까지 먹을 생각도 없고, 아무리 빨간 매운탕이라고 하더라도 좀 느끼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역시나 신라면 수프가 들어가면 마법처럼 맛이 좋아졌다. 건강에는 좋은 조합은 아니지만, 소주 안주로는 그만한 것도 없었다. 그렇게 마시다 보면 낮술에 소주 두 병이나 세 병은 문제없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노량진에서 회를 먹으면서 낮술을 즐겨본 것이 말이다. 2020년 1월에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겠거니 했던 코로나가 점점 심해지더니 서울이라는 곳을 가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이렇게 식당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인지 몰랐다.
한 번은 7월쯤 노량진을 가본 기억이 있는데, 회를 먹으려고 갔더니 활어회 코너가 다 문을 닫았다. 알고 보니 여름철에는 활어 코너 대부분이 쉬는 것 같았다. 덕분에 생전 처음 먹어보는 민어에 맑은탕을 먹었는데, 역시나 우리는 모둠회에 빨간 국물이 최고였다. 생각해보면 항상 해오던 것도 꼭 당연한 것만은 아녔다.
친구와 항상 그렇듯 술을 마시고, 사육신 공원에서 한강을 바라봤다. 20대 후반에 함께 바라보던 한강은 그대로인데, 벌써 우리는 마흔이 넘었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삶이 퍽퍽하긴 똑같았다. 아니다. 그사이 우리 인생에 장마가 너무 많이 왔던가? 더 말이 많아진 아저씨가 되어가는 것은 여럿이 아는 비밀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이라는 말을 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로또를 사고는 용산역으로 돌아갔다.
솔직히 앞으로 일어날 일은 예측할 수 없다. 포장지를 열지 않은 선물처럼 내용물은 알지 못 한다. 그래도 부쩍 많아진 사람들로 볼 것이 많았고, 여름이 오기 전에 회도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그거면 충분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즐겁게 만나고 헤어지는 소소한 행복이 나에게는 마흔이 된 아재의 어린이날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