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가끔은 작가만 보이는 통계의 검색 단어를 보게 된다. 아마도 나의 주된 검색 타이틀은 '사회복지 공무원', '병원 입원', '휴직', '노인일자리', '기초연금' 등이다. 그런데 요즘 자주 검색하는 단어가 구례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구례는 내가 2020년 휴직을 하면서 처음 접했던 꽃구경이었다. 그리고 관련된 글을 쓰면서 다시금 연관검색이 된 것이다.
브런치 검색어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또 집에만 있기 답답했다. 그래서 모처럼 차를 타고 곡성을 지나서 구례로 이어지는 긴 꽃터널을 다시금 드라이브했다.
역시나 꽃은 꽃이고, 자연은 변한 것이 없지만, 사람이 2년 전과 다르게 많이 늘었다. 그렇게 코로나의 시작과 그 끝이 점점 보이는 변화가 느껴졌다.
도로를 삥 돌다가 예전에 먹었던 음식 사진을 핸드폰에서 검색했다. 곡성에 맛집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나루터라는 식당에서 먹었던 참게 수제비와 다슬기 전이다.
아마도 섬진강의 맛을 대접한다면 난 주로 이곳을 꼽는다. 물론 참게 수제비는 접하기 어려운 음식이고 혼자 오기는 힘든 곳이라서 친구나 가까운 지인이 함께 그것도 1시간 전 예약도 필수이긴 하지만 말이다.
온전하게 사람을 만나고 즐겁게 꽃구경을 했다면 이것을 즐겼을 것이다. 그리고 하얀 꽃잎이 흩날리는 순간을 느끼면서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일을 쉬면서 주변에 걱정과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지만, 과연 내가 꽃을 보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모처럼 용기 내서 나온 자리에서 씁쓸한 죄책감과 불안감이 생겼다.
사실 사람들은 나를 찾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일부러 연락하지 않는 것 같다. 한동안은 내가 연락도 받지 않았고, 주로 연락해온 사람들은 내 걱정보다는 본인의 걱정을 털어놓기 위한 것뿐이었다. 어쩌면 영영 외톨이, 괴짜로 보이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막상 꽃을 보니 묘한 죄책감에 눈부신 햇살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가 길가에 강아지를 보게 되었다. 이제 한 두 달 되어 보이는 철 모르는 하얀 강아지. 어느 식당에 묶여 있으면서도 행복한 녀석을 보면서 활기찼던 몇 년 전 내 모습을 떠올렸다.
짓궂은 녀석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 했다. 주변에 모든 것을 물고 뜯지 않으면 직성에 풀리지 않는 멍멍이다. 그런 하얀 털뭉치를 보면서 살짝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잠시 벚꽃보다 더 화려했던 내 지난 모습을 생각했다.
나도 저 하얀 강아지처럼, 아니면 벚꽃처럼 화려한 모습을 피우고 행복할 수 있을지. 생동감있는 하얀 위로가 막연하게 그 시절을 공유했던 오랜 친구가 보고 싶게 만들었다. 초대하고 싶다. 그리고 곡성에 가야겠다. 참게 수제비와 다슬기 전을 먹으며 소소하게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