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망양정에서 미웠던 사람을 따라가기
미웠다. 역사를 좋아하는 고등학생이지만, 이 사람은 너무 미웠다. 그 밉다는 것이 인물이 대단해서 더 억울하게 싫었다. 아마 고등학교 수능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국어 포기를 만드는 역사적 인물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단연 송강(松江) 정철이 아닐지?
이 역사적 인물은 선조 13년에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되고서 뛰어난 글재주로 왕을 사모하는 〈관동별곡〉을 저술했다. 관찰사가 관내 순찰을 하는 그것까진 좋은데, 경치가 어찌 좋았던지. 문학 작품으로 남겼을까? 몇백 년이 지난 후손은 이런 감사(?)는 거절하고 싶다.
당시에는 글을 배운 사람도 적었지만, 오직 글로만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시대였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이상. 구술로 언변 좋은 사람이 장터에 판을 깔아서 맛깔나게 설명하지 않는 이상. 평생 강원도 유람을 못 할 사람들이 사진도 없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나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흔히 좋은 세상을 사는 나도 그랬다. 사람이 직접 느낄 수 있는 인간의 감성은 단순하면서 감각적이다.
굳이 정철이 남기지 않았어도 구전으로 사람들이 이어서 말을 붙었을 테지만, 감사하게도 오래전에 지역적 풍경을 브랜드화시킨 대단한 문호이다. 덕분에 지금 후손들은 밥을 먹고살고 있다만 너무 어렵다. 단지 현재 후손들은 옛 언어의 표현을 외우고 배울 뿐이다. 그래도 월송정과 망양정은 언젠가는 가보겠지 하며 살아왔다.
미운 사람은 닮아 간다고 할까? 그토록 수능 수험으로 괴롭히던 정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월송정과 망양정을 모두 다녀봤다. 망양정 같은 경우에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하는 것이다. 이곳 망양정은 내가 사는 지리산에서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마지막 코스이다. 새벽에 출발해서 밤늦게 달려서 가면 볼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맛집인데 횟집보다 바지락 칼국수로 유명한 곳으로 기억한 명승지다.
하지만 이번에는 작정하고 7번 국도를 올라가는 중이다. 점을 찍듯이 가는 것이 아니라 해가 지는 모습도 틈틈이 눈에 담을 수 있게 늦은 시간 도착했다. 그래서 조금은 정철과 이곳 망양정에 대해서 생각할 틈이 있었다. 흘러내린 땀을 해풍에 말리고 있는 와중에 떠올렸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자였을까?
풍경 좋은 곳에는 꼭 정자가 있다. 월송정은 바닷가 주변에 소나무밭이 있고, 바다가 보이는 이 층 구조의 정자가 동해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구조이다. 망양정은 산기슭에 팔작지붕 구조로 오르기도 힘든 곳에 떡하니 자리한다. 아마 술 잔치가 벌어졌을 법한 널찍한 공간이다.
내가 뚠뚠이 시절에 조금만 경사진 곳을 오르면 숨이 헉헉하고 차오르는 시절. 망양정은 이른바 등산이었다. 결코, 낮은 곳은 아니다. 게다가 위풍당당한 기와지붕이다. 물론 당시에 모습이 그대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몸 하나 편하지 않게 올라가는 나로서는 나무 기둥 하나, 받힌 돌덩이 하나가 어찌 올라갔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물론 정철은 문학적으로 대단했던 사람이다. 또한, 정치가로 좌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당시 양반으로 사대부로 최고의 지위와 능력을 마음껏 누렸던 지배층이었다. 수많은 정치가 중에서 문학적 업적과 영향력으로 나 또한 그의 발자취를 따라왔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잠시 당시를 상상해봤다.
동해안의 절경을 당시 사람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표주박에 담은 물병에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상투 머리 이마에서 땀이 흘렀을 것이다. 관찰사가 따로 부임해 온다는데, 금강산에서부터 여기까지 순시를 돈다고 한다. 음식과 잔치를 마련하려고 인근 백성들은 정자에 올라왔을 것이다. 아마 오래전에 그들의 조상은 이곳에 경치가 좋다는 말에 부역으로 동원되어서 정자를 세웠을 것이다. 당시 냉해와 자연재해가 심했던 특이한 시기에 높으신 양반이 오신다는 말을 고운 말로 맞이할 백성은 어디 있었을까? 대부분 노동요를 부르며 부역에 나라님 욕을 하며 참았겠지.
수 백 년 후에 정철이 둘러본 경치를 나도 보고 있다. 관직이 상승한 것인지? 아니면 한직으로 밀려난 것인지? 한양을 가마다 하는데, 이곳에 왔다. 임금이 있는 한양을 바라보면서 임을 그리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선정을 베풀겠다는 마음은 있었겠지만, 오랜 순시를 행차하며 가는 길이 아름다운 정철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지.
사실은 나는 정철 때문에 왔지만, 막상 오른 이곳 망양정에서 경치를 누리는 덕분은 그 당시 나라님 욕하며 부역을 했을 백성이기에 감사는 고생한 선조 님께 하고 싶다. 그게 당연한 것 같지만, 지금도 그 당시도 감사함을 다른 이에게 드리고 있지 않을지. 좀 생각해볼 시간이다. 정말 불렀어야 할 관동팔경의 노래는 임금이 아닌 백성을 위해서 불었어야 했던 것 아닌지. 당시 정철에서 한 번은 묻고 싶었지만, 생수를 마시면서 이내 목구멍이 밀어 넣어버렸다.